[한국경제, 제3의 길을 묻다] 분배 통한 ‘체질개선’ 꾀해야

2011-04-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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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유경 이수경 기자) 일본은 한국보다 10~20년 앞서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일구었다. 산업의 근간은 한국과 같은 제조업이었으며 판로는 해외였다.

1950년대부터 압축성장을 이룬 일본은 한때 미국 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1980년대 자산 버블이 붕괴하며 저성장의 굴레에 빠졌다.

이후 일본 사회는 급속도로 보수화, ‘승자독식’의 문제가 심화하며 부(富)와 계층의 고착화라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떠안게 됐다.

결국 일본경제는 △경제성장세 위축 △사회의 보수화 △부의 쏠림 △경제성장 욕구 감소 △사회 활력 감퇴 △인구 감소 등의 수순으로 만성적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의 성장 모델을 지향해온 한국도 이미 저성장 궤도에 진입한 만큼 일본경제의 침체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으로 효과적인 자원 배분과 이를 통한 내수육성을 꼽는 목소리가 많다.

한국처럼 성숙기에 접어든 경제는 ‘성장’보다는 ‘분배’가 사회 전체의 후생을 늘리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내수기반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배에 대한 공공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며 경제주체 전반의 의식 변화와 역할 변신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정부역할 ‘포크레인’에서 ‘컴퓨터’로

한창 성장할 때인 15~18세 청소년의 하루 권장 열량은 2775Kcal. 이미 몸이 다 자란 성인 남자의 권장 열량은 2500Kcal. 청소년이 어른보다 10% 가량 많다.

만약 성인 남자가 매일 청소년 수준의 열량을 섭취한다면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살만 찔 것이다. 이미 중년 단계에 들어선 한국 경제는 더 이상 투입을 통해 성장을 이룰 단계가 아니란 이야기다.

한국 경제가 성숙기에 들어선 만큼 과거와 같은 불도저식 성장 정책은 효과가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앞으로 정부의 역할은 관리형으로 제한돼야 하며 안정적인 발전과 효율적인 분배를 목표로 경제의 리빌딩 작업을 해야한다는 조언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과거 선진국의 사양 산업을 국내로 가져와 은행자금을 몰아줘 산업을 육성하던 시기는 끝났다”며 “오히려 최근에는 복지나 사회안전망 등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의 자발적 투자를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 및 세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는 기업의 성장 욕구를 제한해 혁신을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가계소득 증대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 육성지원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높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선 기업이 투자를 활성화하고 이익을 제대로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는 국가 기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을 보호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올릴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착한기업이 뜬다”

“사회 전체 후생을 늘리는 기업이야말로 ‘착한기업’이다.” 쉽게 와닿진 않지만 앞으로 기업을 평가할 때 중요한 잣대로 사용될 수 있는 말이다.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고용 및 임금을 늘린다면 사회 전반적인 후생은 불어난다. 이럴 경우 기업의 이익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가격 하락 및 가계 소득 증대로 판매량이 증가해 오히려 이익은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전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자동차용 강판의 압축도를 높이고 생산공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생산단가를 낮췄다.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해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게 됐으며, 시장의 수요 증가에 발맞춰 설비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게 됐다.

도요타가 세계 최대의 회사로 성장했음은 물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힌 것도 후생 증대를 통한 공공선을 실천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기업 간 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은 이 같은 경영방식을 ‘모험’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분배를 통해 내수기반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과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단기 업적주의에서 탈피할 필요도 있다. 최근 국내기업들이 부채비율 ‘제로’를 초우량기업의 기준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이는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 시스템이 만든 병폐란 지적이다.

아울러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구조를 구축해 중소기업의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된다.




◆ 가계 “빚·사교육비에서 자유 찾아야”

한국의 가계는 그동안 몇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심각한 수준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을 정부가 해결하고 여기서 발생한 비용을 가계 부담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지난 2000년대에는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며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800조원에 다달았다. 가계가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처분하지 않는 이상 정리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가계의 소비 및 저축 여력을 줄이고, 향후 재산축적에 대한 의지를 꺾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0~2009년 개인 가처분소득은 연 평균 5.7% 증가한 데 비해 가계부채는 11.6%나 늘었다. 개인들이 재산을 쌓는 것보다 부채를 지는 데 더 익숙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명확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도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도 늘어난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가계와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아울러 사교육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가능성에 대한 의지도 꺾을 필요가 있다. 서울에서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월 평균 사교육비는 65만원. 일반 가계의 한달 생활비와 맞먹는다.

일반 부모들이 교육은 가파른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갈수록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고학력 실업자가 늘고 있어 고등교육과 소득증대는 반드시 정비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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