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지진과 쓰나미, 원전 폭발이라는 세 쌍둥이 악재가 아시아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유가와 식품 가격 급등으로 이미 성장세가 약해진 상황에서 들이닥친 일본발 악재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아시아 최대 수출국인 일본과의 교역 차질은 단기적으로 또 다른 불확실성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역 차질 우려는 무엇보다 지진으로 훼손된 인프라가 상당하다는 데서 불거지고 있다. 지난 11일 규모 9.0의 강진이 강타한 일본 동북부 지역은 핵심 산업기지는 아니지만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는 물류망과 발전소 등의 기반시설을 파괴했다.
주요 기업들도 잇따라 생산중단에 나서고 있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위축시키기고 있다.
푸윙훙 말레이시아 전기전자연합 회장은 "일본의 항구가 폐쇄돼 물류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특히 전자업계가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재건 작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일본 경제의 회복을 북돋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자재나 원목 등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복구를 위한 일본의 수요 반등은 올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팀 고든 ING 싱가포르지사 이코노미스트는 일본과 주변국들과의 교역이 오히려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교역 감소가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같은 다른 문제와 결부돼 아시아 지역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곧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경제 규모로는 중국에 뒤진 3위로 처졌지만 여전히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향한 해외직접투자의 발판이 돼주었고, 또 매년 100만명의 일본 관광객들이 태국을 찾는 등 관광수입의 주요 동력원이 돼 왔다.
차로엔 왕가나논트 태국 관광업협회장은 "태국에서는 이미 7만여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방사능 우려로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며 "일본인들의 태국 여행 일정 취소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들은 일본 정부의 개발지원기금을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본의 개발지원기금은 이 지역 개도국들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요 재원으로 활용돼 왔다.
필리핀의 후안 폰세 엔릴레 상원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은 자국을 재건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에게 약속한 자금 지원은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당분간 일본이 사라진 아시아 원자재시장도 휘청거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와 호주 등지에서 철광석, 석탄, 천연가스 등을 빨아들여왔기 때문이다.
WSJ는 중국 관리 및 애널리스트들의 관측과는 달리 중국도 일본 지진 사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중국 정부가 추가 긴축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만큼 경기과열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중국이 일본의 최대 수출 종착지였다며,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저렴하게 생산을 할 수 있는 중국은 지난 몇년간 일본 전자업체의 최종 조립 기지 역할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최대 에너지 수입국으로 꼽히는 중국은 일본의 에너지 수요 급증에 따른 유가 상승 압박도 견뎌내야 한다.
당초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만 발생했을 때는 일본의 에너지 수요가 줄어 국제 유가의 급등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잇따른 원전 폭발로 일본의 화석연료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가오 시지안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에너지연구소(ERI) 연구원은 "원전 사태로 일본은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고, 이는 단기적으로 화석연료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