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개발에 신음하는 한반도] '개발병' 걸린 지자체.. "빚더미에 허리 휜다"

2011-02-0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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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공약·선심성 행정…수도권 개발공사 부채 25조원


전국토의 12%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이 모여 사는 수도권은 과개발에 신음하는 한반도의 축소판이다.

급속한 경제성장 시대에 과도한 산업·인구의 집중으로 무계획적 팽창을 거듭하던 수도권은 아직도 부실한 계획의 개발 관성만이 지배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물론 기초자치단체까지 무작위로 개발에 나서면서 수도권은 거대한 콘크리트 촌으로 변하고 있다. 땅을 파고 건물만 지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는, 개발에 대한 '맹신'은 국토와 나라 경제를 망치고 있다. 

◆ 빚더미로 전락하는 개발 지상주의

정부와 광역·기초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각종 개발사업들은 이미 온갖 프로젝트가 중복돼 폭발 직전인 수도권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자치단체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빚 때문에 파산을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수도권을 구성하는 3개의 큰 축인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지역개발을 위해 각자 설립한 도시개발공사의 재무현황을 들여다보면 '과개발' 문제의 심각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SH공사, 경기도시공사, 인천도시개발공사의 지난 2009년 말 기준 부채규모는 약 25조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부채규모가 더욱 늘어나 현재는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김포시, 용인시, 남양주시, 의왕시 등 경기도 내 기초자치단체에 설립된 도시개발공사의 부채만도 수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한달 금융이자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처럼 이들 공사의 부채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세계 경제상황 등을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장밋빛 전망만을 믿고 무리하게 각종 개발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각종 택지 개발, 주택 건설, 산업단지 조성사업은 물론 심지어 아파트형 공장이나 유통단지, 호텔 건설사업 등을 벌이며 몸집을 키워왔다. 부채규모는 단기간에 급증했고 '이자 폭탄'에 모체인 자치단체의 재정까지 휘청거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수도권 자치단체가 설립한 도시개발공사 중 부채규모가 가장 큰 곳은 서울시의 SH공사다. 부채규모가 2009년 말 기준으로 13조567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16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서울시 전체 부채인 23조6000억원(2009년 결산 기준)의 58%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울시 1년 예산인 20조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같은 부채 증가는 동남권유통단지(가든파이브)·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한강 플로팅 아일랜드·마곡 워터프론트 등 각종 개발사업을 벌인 것이 주요 원인이다. SH공사는 심지어 베트남 홍강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택지개발사업, 주택건설사업, 도시정비사업, 집단에너지사업 등 SH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송도지구, 청라지구, 영종지구 등 인천지역 경제자유구역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온 인천도시개발공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인천도시개발공사의 이자비용은 지난 2006년 3300만원에서 2009년 57억8000만원으로 175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부채규모가 1조1866억원에서 4조4608억원으로 4배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시공사도 남양주 진건지구와 지금지구 보금자리주택 개발에 참여하고 김포시, 파주시, 시흥시 등에서 실시한 주택사업이 대거 미분양되면서 부채규모가 6조7159억원으로 증가한 상황이다.

이밖에 김포시, 용인시, 남양주시, 평택시, 화성시 등 도시개발공사를 세워 개발이익을 노리던 많은 경기도 내 기초자치단체들은 경기침체로 각종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차질을 빚으면서 재정 운영에 큰 부담을 받고 있다.

◆ 부풀려진 수요·전시행정이 문제

왜곡되고 부풀려진 수요예측과 전시행정, 이에 따른 무리한 지역개발은 과개발 및 미분양아파트 증가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며, 우리 사회 전체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995년 부활된 지방자치제도에 따라 4년 만에 뒤바뀌는 지역 수장(시장·군수·구청장)들의 장밋빛 공약과 선심성 행정도 지역 과개발을 부추기고, 지자체를 빚더미에 오르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남시와 용인시가 호화청사를 지은 뒤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도 전시행정의 부작용이다.

인천시가 송도신도시와 청라지구를 개발하면서 무리하게 예산을 쏟아부은 것도 안상수 전 시장의 장밋빛 공약에서 비롯됐다. 해외자본을 끌어들여 동북아 금융허브를 건설하겠다는 청라지구의 야심찬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있으며, 국내 기업과 대학을 유치,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경제자유도시로 키우겠다는 송도국제도시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인구와 주택 등의 수요예측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수도권 남부의 대표적 주거지역인 용인시는 지난 2000년대 초 수립한 도시기본계획에서 시의 인구가 약 117만3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 인구는 87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와 김포시도 용인시와 사정이 비슷하다. 고양시는 올해 인구가 약 102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94만여명에 머물고 있고, 김포시도 현재 인구가 23만명 수준으로 예측치보다 10만명가량 적은 상태다.

이같은 현상은 파주시와 남양주시, 화성시 등 수도권 주요 지자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어긋난 인구예측이 미분양아파트라는 결과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부풀려진 인구예측에 맞게 주택 확보에 나서다보니 과도한 택지개발이 이뤄진 것이다.

경기도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용인시의 미분양주택은 6085가구로, 수도권 전체 미분양 물량의 21%에 달했다. 고양시와 김포시의 미분양아파트도 각각 4948가구, 2042가구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밖에 수원시 1562가구, 파주시 1411가구, 남양주시 548가구 등 수도권의 주요 지자체들에는 수백에서 수천가구에 이르는 미분양주택들이 쌓여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오는 2018년까지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약 100만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도 수요부족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협성대학교 지역개발학과 조영국 교수는 "각 지자체들이 과거 인구 증가 추세를 기반으로 과도하게 미래 인구를 예측한 것이 정확하지 않은 수요를 양산했다"며 "외국의 경우 신도시 개발에 약 30~40년이 걸리는 만큼 우리나라도 신도시 등 각종 개발계획 수립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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