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가 정설이다. 강대한 로마제국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유일 강대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역사는 서양에 의해 움직여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4세기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몽골군이 유럽 동부를 휩쓸고 있었다. 우월은커녕, 서양이 아예 동양과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때였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은 중국의 패전이기도 했지만, 동양의 패배였다. 이 전쟁에서 영국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아시아대륙의 실력자를 꺾으면서 동양과의 격차를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다. 유럽은 철도와 총포로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하나, 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유럽을 쫓아가기는 힘들었다. 정치적으로는 해방됐으나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지배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다시 아시아로 옮겨 오고 있다. 동양이 식민과 수탈의 질곡(桎梏)을 넘어 세계 경제 성장의 중심에 섰다. ‘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은 고도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과 비교해 지난해 신흥아시아 국가의 GDP(국내총생산)는 7.5배 수준으로 늘어났다(‘05년 구매력평가 기준). 3.3조 달러에서 24.5조 달러가 된 것. 같은 기간 세계경제 규모는 3배가 됐고, 선진국의 GDP는 2배 수준으로 늘어난 데 그쳤다.
세계 GDP 및 무역에서 차지하는 신흥아시아국가의 비중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1980년 9.1% 및 8.0%였던 것이 2009년에는 27.0% 및 25.7%로 각각 늘었다.
아시아 국가의 중심축은 단연 중국과 인도다.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G2로 부상한 중국은 올해에도 9%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인도도 만만치 않다. 12억 명이 넘는 인구와 젊은 층이 두터운 인구 구조, 그리고 영어구사능력을 바탕으로 올해에도 8% 이상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위 신흥공업경제국은 올해에도 4.5% 안팎의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국들도 괜찮다. 이들 국가들은 중국,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아시아의 FTA 허브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올해에도 5% 안팎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강한 성장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눈앞의 위협이 되고 있다. 또한 3~4년 후부터는 해외유입자금의 투자효과가 사라지고 선진국의 소비침체는 이어질 것이다.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2010년대 후반 무렵에는 아시아 경제도 부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위협이 될 뿐이다. 중국 같은 나라는 정책적으로 벌써 올해에 시작되는 12차 5개년 계획에서부터 민간소비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1인당 GDP증대에 따라 아시아시장의 내수(內需)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중이다. 서양의 수입수요(輸入需要) 약화를 견딜 내성(耐性)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몇 백 년 만에 동양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려는 순간이다. 서양의 대응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