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서대문지점 입구에 하나금융지주와의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외환은행 직원들은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대한 우려로 어느 때보다 우울한 연말을 보내게 됐다. |
(아주경제 이재호 이수경 기자) 2010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차분히 마감해야 할 시점이지만 은행원들은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러운 연말을 맞고 있다.
은행 간 인수합병(M&A)이나 희망퇴직 실시 등으로 실직 우려에 잠 못 이루는가 하면, 경영진이 연루된 스캔들로 고객들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는 등 안팎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외환은행 직원들은 지난 주부터 노란 리본을 달고 업무를 보고 있다. 리본에는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를 비판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M&A에 반대하는 이유는 외환은행 쌓아 온 정통성과 효율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홍보위원은 "행명과 상장 유지를 원하고 있지만 결국 외환은행은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나금융 입장에서는 시너지가 있을 수 있지만 외환은행은 그 동안 갈고 닦은 경쟁력만 유실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 감축은 보다 현실적인 고민이다.
외환은행 사당점의 한 직원은 "아무래도 두 은행이 합쳐지면 구조조정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며 "유예기간이 있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금 삭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외환은행의 임금 수준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앞으로 배당률 등을 줄여 임금을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서대문지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하나금융 측에서 이미 두 은행이 합병된 것처럼 떠들지만 아직 금융위원회 승인도 나지 않았다"며 "M&A 소식이 전해진 후 직원들 사이에서 똘똘 뭉쳐 투쟁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한 국민은행도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5일에는 퇴직금이 입금됐다.
희망퇴직을 신청한 한 직원은 "새벽에 퇴직금이 입금됐다는 휴대폰 문자(SMS)가 울려 잠에서 깼다"며 "은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향후 거취에 대한 불안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여의도 본점에서 근무하는 한 계약직 직원은 "내년 초 분사하는 KB카드로 옮길 직원들을 공모하고 있는데 계약직은 연체 독촉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는 소문에 우울하다"며 "실적이 부진한 직원들을 따로 관리하는 성과향상추진본부도 설립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불안하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은행 중 단연 돋보이는 실적을 기록 중인 신한은행 직원들은 예상치 못한 경영진 내분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신한은행 본점 영업부의 한 직원은 "실적은 군계일학이지만 이른바 '신한 사태'가 터지면서 조직 분위기는 최악"이라며 "고객들에게 사과 편지를 발송할 때는 신한은행에 입사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처럼 다사다난했던 해는 없었던 것 같다"며 "은행마다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는 데다 노사 간 임단협도 난항을 겪고 있어 따뜻한 연말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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