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림같은 좋은 정치인이 실제로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물'에 출연했습니다."
차인표(43)가 매주 수-목요일 밤 딱 떨어지는 멋진 수트차림을 하고 나와 짙은 눈망울 가득 힘을 주며 조국의 미래에 대한 '우국충정'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패정치, 금권정치, 밀실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는 야심만만한 개혁파 국회의원 강태산. 시청률 25%를 웃도는 인기 드라마이자 정치권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SBS TV '대물'에서 주인공 서혜림(고현정 분)의 반대파인 강태산을 연기하는 그에게서는 매회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남자 배우라면 정치인은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보고픈 역할 아닐까요? 드라마 후반에 가면 강태산과 서혜림이 각기 대권에 도전하는데 선거 유세하는 연기도 스릴 넘칠 것 같고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역할입니다."
대본 수정작업으로 지난 12일 모처럼만에 하루 휴식을 얻어 인터뷰에 응한 차인표는 "'대물'은 서혜림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의 사람이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으로 그점이 부각돼야한다"며 "그런 점에서 강태산이나 권상우 씨가 연기하는 하도야는 부수적인 인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놉시스를 처음 받았을 때 가슴이 떨렸습니다. 한류 붐을 타고 우리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 방송되면 여전히 여성들이 억압받는 나라의 여성 시청자들은 우리 드라마를 보며 큰 희망과 위로를 얻을 것 같았습니다. 서혜림처럼 평범한 가정주부가 대통령이 되는 드라마를 보면 용기를 얻지 않을까요. 그 말에 고현정 씨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더군요."
강태산은 언뜻 보면 개혁파 같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다. 선배 정치인들의 구태와 부패를 청산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결국 그 역시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강태산은 개혁정치의 선두주자이지만 이미 현실정치에 많이 물든 인물입니다. 목표를 위해 나쁜 짓도 서슴지 않죠. 여당의 우두머리 조배호(박근형)를 흑막정치의 대표로 생각하지만 어느새 그 역시 조배호와 닮아가고 있어요. 강태산이 멋진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별로 신빙성이 없어요. 상황에 따라 표변하거든요.(웃음) 그런 모습에 서혜림도 결국엔 실망하게 될거고요. 그런 점에서 강태산은 악역 혹은 안티 히어로입니다. 15-16부부터는 서혜림과 대립각을 세우게 될겁니다."
그는 현재 '대물'에서 강태산이나 조배호, 오재봉(김일우) 등 권모술수를 쓰는 나쁜 정치인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허구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치인들이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워요. 서혜림 같은 착한 정치인이 부각돼야하는데 지금은 나쁜 쪽에 좀 치우친 것 같아 정치인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해요. 그래서 서혜림이 빨리 성장해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바래요. 현실에서도 착한 정치인의 교과서 같은 서혜림같은 인물이 많아지길 바라고요."
'바른생활 사나이'라 불리는 그는 오랜기간 부인 신애라와 봉사, 기부활동을 펼치며 모범적인 연예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을까.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가 내세운 이유가 눈길을 끈다.
"정치인들은 자기를 희생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사생활, 직업 등을 포기해야 하는데 전 그럴만큼 희생정신이 없습니다. 내 생활도 중요하거든요."
그렇다면 그가 언젠가부터 본업인 연기보다 봉사활동에 더 전념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건 전혀 다른 거죠. 봉사는 하면 할수록 기쁨과 사랑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희생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나눠도 나눠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사랑의 기적입니다."
사실 차인표는 올해 초 KBS 1TV 사극 '명가' 이후 당분간은 봉사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명가' 역시 봉사를 하느라 오랜만에 출연한 작품이었음에도 그는 연기보다 봉사에 열의를 보였다. 그랬던 그가 '대물'에 출연한 것도 봉사를 위해서였다.
"'명가' 이후 봉사를 다니는데 어린 아이들은 제가 연예인인줄 모르더군요. 제가 후원하는 구호단체 컴패션이 절 앞세우는 것은 제가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라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저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한번은 교회에 갔는데 어떤 어린 아이가 절 붙잡고 '아저씨 차인표는 몇시에 와요?'라고 하더군요.(웃음)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작품 활동은 계속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동기야 어찌됐든 차인표는 '대물'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기쁨을 다시 느끼고 있다.
"고현정, 권상우 씨랑 연기할 때 정말 좋아요. 서로 뒤지지 않으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는데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해요. 또 이순재, 박근형, 임현식 선배님이 쫙 받쳐주시니 정말 좋습니다. 그분들과 호흡을 맞출 때는 찌릿찌릿해요. 특히 현역 최고령인 이순재 선배님과 연기할 때는 그분과 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습니다. 이분들 모두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워옵니다. 빡빡한 스케줄에도 촬영장에 대본을 들고 오지 않아요. 이미 다 외워서 오죠. 촬영장에 대본 들고 나오면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현정 씨와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 한마디로 프로다. 까칠하고 고고할 것 같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사랑이 많은 배우다. 또 권상우 씨는 장난기가 많은 배우"라고 말했다.
높은 인기만큼 '대물'은 작가, 연출 교체 등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방송을 오래하다보니 이런일 저런일 많이 겪어서 이번 일은 별일도 아니었습니다.(웃음) 내부 사정이야 어찌됐든 제시간에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이 시청자와의 약속이고 그런 점에서 저희 드라마는 현재 아무 문제 없이 잘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