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 시절 우루과이라운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용어와 함께 갑자기 유행했다.
사람들은 처음에 신문ㆍ방송에 세계화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대통령이 경상남도식 발음으로 '세게하'를 외쳐도 그저 맨숭맨숭했었다. 세계화 현상이 실감나기 시작한 건 정부가 나서서 달러 송금액과 해외 사용한도의 제한을 완화한 덕분에 직접 해외 여행을 다녀오면서부터다.
"미국에 가보니까 말야, 별천지이기는 한데 사람들이 정이 없더라고…", "세느강이나 템즈강은 한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이 시절부터 서울 시내 돈푼깨나 만진다는 자영업자와 월급쟁이 중에 골프여행 한번 안해 보고 자녀 한 두명 유학 안 보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해외 여행객과 유학인구가 급증했다. 2000년대 중반쯤 되어서는 아예 조기유학 붐이 대대적으로 일어 '기러기 아빠'들의 처량한 신세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다.
2008년 미국 대형 금융회사 도산으로 인한 경기 악화, 자산가격의 폭락 등 세계화의 부작용 현상이 심각하다고 누군가 떠들어도 외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엔 영어 일어 중국어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아니, 도리어 그런 뉴스가 신문방송에 대서특필되면 될수록 서울 도심지 빌딩가의 1층 로비엔 '저녁 퇴근길에 한잔하자'며 영어로 통화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2010년이 되어서는 전철 간에 뜨문뜨문 동남아 사람 일색이던 풍경은 어느새 미국ㆍ유럽ㆍ일본ㆍ중국 사람들로 다양해졌고 대학가 술집은 물론이고 동네 슈퍼만 가도 거의 매일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을 만나곤 한다. 서울 명동 거리는 일본 한류팬들에 이어 중국 관광객들이 쇼핑하느라 북새통이며 심지어 제주도 올레길 투어에도 허름한 차림의 중국인 일가족이 웃고 떠들며 올레꾼들과 어울린다.
요즘은 "세계화가 뭐야?"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낯선 외국인과도 그저 어색해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자영업자들은 외국어 몇 마디 익히면 매상이 는다며 반기고 중소기업 사장들은 부족한 일손을 메워주는 외국인 일꾼들을 고마워한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경제, 정치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지도국이 되었다는 격려가 폭포수처럼 쏟아지지만 정작 국민들은 담담하다.
G20 정상회의조차 이제 데면데면한 일상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공교롭게도 최악의 경기불황기인 2010년 김장철, 수능철에 열려 반응마저 시큰둥하다. 게다가 세계화는 이제 정부 홍보를 위한 호들갑이나 국민 계몽의 깜냥이 아니다. G20 유치로 이명박 정부 자존심 세운 치적은 어서 뒤로하고 내치의 세계화를 묵묵히 실천해주었으면 좋겠다.
세계화는 허상을 좇으면 쪽박이요 내실을 챙기면 대박인, 복불복 속 지혜로운 선택의 문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이젠 없다는 거, 힘깨나 쓰고 말마디나 한다는 사람들이 명심해주었으면 좋겠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bkkim@dreamwiz.com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