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르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이 물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물을 먹게 된다. 기자 스스로 먹고 싶어 먹는 물이 아니다. 소위 언론계에서 말하는 ‘물’을 먹고 있는 것이다.
본지에 들어온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아마 먹은 물의 횟수만 10여회가 넘는다. 기자 스스로의 커밍아웃이라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나 부끄럽다. ‘결과에는 말이 필요없다’고 하지만 결단코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해체한 여성그룹 쥬얼리 멤버 서인영이 히트시킨 유행어 ‘신상’. 신상품의 줄임말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좋은 것’ ‘예쁜 것’ ‘갖고 싶은 것’ 등으로 풀어볼 수 있다. 한때 대한민국 마케팅업계가 ‘신상’이란 단어로 도배되다시피 할 정도로 그 단어가 지닌 의미는 막강하다.
그러나 이 세상어디에도 예외는 있다. 언론계 특히 신문업계의 신상은 누구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나머지’로 불릴 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갖고 싶은 것이 아닌 단지 존재 자체로만 ‘존재의 이유’를 인정받는 ‘불쌍한’ 처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기자가 본지 영화 기자로서 업무를 시작하고 얼마 뒤에 있던 일이다. 홍콩을 오가며 아시아권 스타로 이름값을 높이고 있는 한 배우의 인터뷰 요청에서 물을 먹은 뒤였다.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전화 통화를 했다. ‘아주경제 신문 김재범입니다’ ‘어디요?’ ‘아주경제’ ‘네?’ ‘아주경제요!!!!’. 공중파 공개 코미디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아니다.
최근 한 영화제작발표회에서는 좀 더 강도가 셌다. 이날 역시 극장 안을 가득채운 인원의 절반가량이 배우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팬들이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단지 영화 기자라면 누구나 문제를 삼는 언론 관련 행사의 일반인들 출입 문제를 짚고 넘어갔다. 오지랖이겠지만 계속된 ‘물마시기’로 인해 트집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기자의 질문에 당시 홍보사 직원은 “관할 내용이 아니라 모르겠다”는 답변만 내놨다. 해명 아닌 해명을 수긍하고 돌아서는 기자의 뒷통수를 찌르는 말 한마디가 참 아팠다.
“어디 기자라니” “아주경제라는데요?” “어디?”
결코 신상이 좋은 것만 아닌 것 같다. ‘묵은 장이 제 맛’을 내는 것처럼 언론과 기자도 최소한 몇 년은 묵어야만 물 대신 다른 걸 먹을 수 있나 보다.
kimjb5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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