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소설읽는 낭독음악극 '왕모래' 무대에서는...

2010-10-3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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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작품을 원작으로 한 낭독음악극 '왕모래'

부정적 어머니의 모습과 존속살인은 역설적으로 모성애를 강조한다.
(아주경제 오민나 기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몸짓이 대신 말한다. 몸짓이 여의치 않을 때엔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27일 대학로 원더 스페이스 동그라미 극장에서 선보인 낭독음악극 ‘왕모래’엔 이렇게 말과 몸짓·국악·영상이 한데 어우러진 무대였다.

이 작품은 소설가 황순원의 소설 ‘왕모래’가 바탕이다. 왕모래는 가난, 매춘 그리고 약물중독에 빠진 한 어머니의 부정적 모습을 통해 오히려 모성애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닌 탓에 전문 성우인 이선 씨의 낭독은 오히려 조곤조곤하게 들린다. 생황·대금·아쟁 등 전통악기가 내는 소리와 연주가의 손길은 극 전체에 흐르는 작품의 무거운 분위기에 덩달아 구슬프다.

무대 왼쪽 스크린에는 영어 자막이 작품과 함께 흐른다. 한국 문학과 국악을 동시에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꽤 괜찮은 경험이다. 지난해 페루공연 때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이라 그런지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는지 문득 궁금했다. 임형택 감독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임 감독은 가족의 분화 등 우리사회의 당면 문제를 전 세계가 같이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슬프면서도 충격적이다.

잠든 어머니 목을 돌이는 조용히 안았다. 그리고 그 팔에 점점 힘을 주었다. 여윈 어머니 몸이 목 비틀린 잠자리모양처럼 떨렸지만 돌이는 팔에다 힘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레이터와 함께 버둥거리는 엄마의 목을 돌이가 팔에 감으며 극은 끝난다. 존속살인이다. 하지만 임 감독은 파격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는 돈을 벌겠다고 뛰쳐나가 자식을 버렸고, 결국 자식이 껴안고 싶어 했던 엄마만 무대에 덩그라니 남는 모순적인 장면이라고 설명한다. 파격이라기 보다는 우리사회가 안고 살고 있는 절실한, 그렇지만 기성세대가 방치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장면에선 오히려 분노보다 눈물을 보이는 관객도 있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신선한 무대는 반갑지만, 극이 전해주는 무거운 분위기는 마치 모래알을 씹는 듯 서걱서걱한 느낌이다. 불이 꺼진 무대에는 긴 침묵만이 흐른다. 


▶11월 7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 극장. 문의 02-59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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