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이 영화, ‘리얼 타임 스릴러’란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허점투성이다. 스릴러의 전형인 ‘위장’과 ‘은폐’에 대한 해답은 영화 시작부터 오픈한다. 굳이 범인이 누군지와 주인공이 위험에 처한 이유를 감추지 않는다. 스릴러 영화팬들의 보는 수고를 상당부분 덜어준다.
영화의 내용은 더 간단하다. ‘가족이 인질로 잡힌 한 여성과 연쇄 살인범의 사투.’ 너무나도 흔한 스토리다. 바꿔 말하면 어디에서도 매력을 찾을 수 없는 영화란 소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참 잘생긴 스릴러’라 칭찬하고 싶을 정도로 영리한 영화다.
스릴러는 태생적으로 기초공사가 튼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예상을 뒤엎는 극적 반전과 ‘죄임’이 갖는 특유의 미학에만 매달린다면 ‘설득력’을 잃기 쉽다. 반대로 ‘설득력’을 얻기 위한 스토리에 집착한다면 스릴러의 구조는 스스로 붕괴된다.
‘심야의 FM’은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얄미울 정도로 피해갔다.
심야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는 인기 DJ 선영(수애). 그는 5년간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을 준비하던 중 정체를 알 수없는 남성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협박 전화를 받는다.
선영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이 남성의 이름은 동수(유지태). 선영의 딸과 여동생을 인질로 잡은 그는 생방송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선영에게 미션을 제안한다.
자신이 시키는 대로 방송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동수. 그것을 청취자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는 선영. 두 사람의 팽팽한 대치는 어느덧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고, 방송은 점차 선영에게 악몽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생방송’이란 한정된 시간적 소재를 마치 시한폭탄처럼 사용해 관객들에게 선영이 느끼는 긴장감을 강요한다.
연쇄살인범이 던지는 미션에 따라 한 치 오차 없이 방송을 진행해야만 하는 선영의 초조함은 보는 이들의 심리적 압박 수치를 끌어올린다. 특히 동수가 제시하는 게임을 풀어야하는 선영의 두 시간은 영화의 러닝타임에 끼워 맞춰진 채 보는 이에 따라 극도의 공포감을 맛볼 수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영화 전반에 밀도 있는 속도감을 양념처럼 흩뿌리며 스릴러의 참맛을 진하게 한다. 분 단위로 쪼개진 빠른 스토리 전개가 롤러코스터처럼 관객들의 오금을 당긴다.
너무나도 익숙한 두 배우가 펼친 의외의 열연도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단아한 이미지의 대명사인 수애는 완벽주의 DJ의 차갑고 도도한 모습과, 가족을 구하기 위한 처절함으로 스크린을 압도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영화 ‘올드보이’ 이후 또 다시 악역으로 돌아온 유지태는 전작에서 선보인 ‘서늘함’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싸늘함’을 선보이며 섬뜩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연출을 맡은 김상만 감독은 디자이너, 미술감독, 음악감독, 인디레이블 설립자, 인디밴드 베이시스트 등 다양한 명함을 소유한 충무로의 숨은 실력자다. 전작이자 데뷔작인 ‘걸스카우트’의 잔상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작품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선보인다.
김 감독은 언론시사회 직후 “심야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갖는 정적인 이미지가 스릴러적 요소로 인해 상처 입으며 생기는 긴장감을 속도감 있게 유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영화를 설명했다.
다만 수 십대의 차량이 펼치는 심야 도심 추격신과 동수가 어떻게 선영의 집에 침입할 수 있었는지 등 ‘과장’과 ‘생략’이 곳곳에 눈에 띄어 ‘옥의 티’로 남을 만하다.
특히 개인의 총기 소지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동수가 들이미는 총구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화적 계산으로 넘기기에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다.
영화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사 보류로 예정된 시사회가 취소되는 등 해프닝을 겪으며 표현 수위에 관심이 집중된 바 있는 ‘심야의 FM'은 14일 개봉한다.
kimjb517@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