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난동자 살해한 70대 노인 ‘면죄부’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경로당에서 흉기 난동을 벌이던 40대 남성을 찔러 숨지게 한 70대 노인이 법원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영미)는 11일 국민참여 재판을 열어 살인혐의로 구속기소된 홍모(75)씨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석방 조처했다고 12일 밝혔다.

홍씨는 지난 7월 10일 오후 1시25분께 서울 서대문구 한 경로당에서 흉기로 노인들을 위협하던 김모(49·무직)씨를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그는 ‘정당방위라 무죄’라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선처를 받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당일 오후 1시께 노인 10여명이 모여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다 발생했다.

동네 주민 김씨가 화투판에 무작정 훈수를 두다 꾸중을 듣자, 흉기를 들고 나타나 ‘다 죽이겠다’며 한 노인의 목을 조르고 칼날을 목에 갖다 됐다.

모임에 끼었던 홍씨가 말리다가 김씨에게 붙잡혀 배를 한차례 찔리고서 일행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당시 김씨가 다른 노인에게 왼손을 붙잡힌 상태에서 다시 홍씨에게 달려들려 하자 홍씨는 땅에 떨어져 있던 흉기를 주워들고 김씨의 배 등을 찔러 숨지게 했다.

검찰은 공판에서 징역 3∼4년을 구형했다. 김씨가 무기를 잃고 한쪽 팔이 붙잡혀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태가 아니었고, 흉기로 찌른 것은 방어가 아닌 공격에 해당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피고인 측 변호인은 홍씨의 행동이 정당방위나 불가벌(不可罰)적 과잉방위에 속한다며 시민배심원들에게 ‘상식에 따른 판단’을 호소했다.

불가벌적 과잉방위란 극도의 공포와 불안 상태에서 자신의 목숨을 방어하면 다소 정황상 정당성이 부족하더라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형법 21조3항에 명시돼 있다.

김씨가 일방적으로 경로당 노인들의 생명을 위협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배를 찔려 피를 흘리던 홍씨가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배심원 7명은 평결 결과 ‘6명 유죄·1명 무죄’로 변호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만장일치로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권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칼을 멀리 던지거나 도망 등의 행위를 할 수 있었는데도 흉기로 두 번 찌른 것은 부당한 공격에 대한 소극적 방어로 보기 어려워 유죄가 인정된다”며 “피해자가 먼저 흉기 난동을 부렸고, 피고인이 70대 고령인데다 전과가 거의 없고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 집행유예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e-mail]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