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 속에 죽어간 두 남자의 인생

2010-09-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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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강'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이 영화 웬지 낯이 익다. 1980년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여중생 강간 살인 사건. 사건을 둘러싼 두 인물의 갈등과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이 부른 파국. 2003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살인의 추억’ 냄새가 난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살인의 강’.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한 여학생의 강간 살인. 그로인한 두 인물의 갈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배경.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985년 전라북도의 한 시골 마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부잣집 모범생 승호(김다현)와 가난한 고아 동식(신성록)은 단짝 친구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또래인 명희를 짝사랑하며, 그녀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내기를 한다.
 
하지만 이튿날 명희는 숨진 채 발견된다. 승호와 동식이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엉뚱하게도 정신병을 앓는 동식의 형 경식이 범인으로 체포된다.
 
승호는 좋아하는 여성이 처참하게 살해된 후에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반면 동식은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않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승호도 동식도 '명희의 죽음' 주위를 맴돌며 옛 상처에 힘들어 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대학생(동식)과 검사(승호)로 두 사람은 재회하지만 또 다시 죽음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빠져들게 된다. 마치 씨줄과 날줄로 엮인 듯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탄식과 원망만을 쏟아낸다. ‘살인의 추억’에서의 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서울 형사 서태윤(김상경)의 갈등. 연이어 터지는 연쇄 살인에 절망하는 두 사람. 범인으로 지목된 지적장애인 백광호(박노식).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보는 이들의 기대완 달리 스릴러의 '죄임'보단 드라마의 '느슨함'으로 고개를 돌린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두 남자의 갈등과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 보단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주목한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 역시 제목에서 풍기는 핏빛 스릴러 보단 시대극에 가깝다.
 
오히려 보는 이에 따라 통상적 스릴러의 복선과 반전에 무게 추를 두었다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마저 생길 정도로 제목이 풍기는 강한 인상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살인의 강’은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가는 세월에 상처받는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아픔을 그리는 데만 주력한다.
 
과연 두 사람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품은 죽음의 진실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이 같은 궁금증을 영화는 매몰차게 외면한 채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과 민주화 운동, 기지촌 여성들의 죽음 등 우리 시대의 굴곡진 단면만을 두 주인공의 모습에 투영시키려 애쓴다. 

   
 
 
 
감독은 언론 시사 직후 “1980년대 전주 인근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이 이 영화의 배경”이라며 “영화적인 성취보다 기록으로 남기도 싶다는 생각에 제작하게 됐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뚜렷한 반전 요소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구분이 흐릿한 까닭에 영화 전반에 우겨 넣은 현대사의 굴곡은 흡사 물과 기름처럼 이분돼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더욱이 승승장구하며 검사가 된 승호와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동식의 설정은 지나치게 진부할 정도다.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인 17년 세월 두 사람을 옥죄인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설득력마저 반감시킨다.
 
다만 범인에 대한 의문과 두 인물 갈등 변화의 궁금증은 주머니에 넣은 채 극장문을 들어선다면 오히려 먹먹한 여운을 안고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스토리의 흐름을 이끄는 승호역의 김다현은 아이돌 그룹 ‘야다’ 출신으로 뮤지컬 ‘헤드윅’ ‘돈주앙’을 통해 주목받았고, 동식 역의 신성록 역시 뮤지컬계에서 기본기를 닦은 뒤 최근 TV 드라마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주목을 끌고 있다.
 
초창기 ‘사랑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2008년 영화진흥위원회의 하반기 독립영화 제작 지원 대상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제작기간 동안 ‘순수의 시대’에서 ‘살인의 강’으로 제목이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청소년관람불과. 99분

kimjb5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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