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각국 금융통화당국이 쉬쉬해온 '글로벌 환율전쟁'의 전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과 중국의 위안화 절상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환율전쟁의 화염은 최근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을 틈타 신흥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25년 전 달러, 15년 전 엔화 초강세 기조를 꺾을 수 있었던 플라자합의나 역(逆)플라자 합의와 같은 국제 공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국제 환율 공방은 금융위기의 후폭풍 격이다. 세계 각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여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고자 일제히 자국 통화 약세 경쟁에 돌입한 것.
특히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서자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지만 아시아지역을 비롯한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강세를 띠며 통화당국을 긴장시켰다. 수출 주도형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신훙국에서 통화 강세는 경기부양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최근 국제 외환시장 안에서 벌어지던 눈치싸움을 표면화하고 나섰다. 6년여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엔ㆍ달러 환율이 83엔 선을 뚫고 15년여래 최저치로 주저앉자 200억 엔 상당을 시장에 투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 일부 아시아지역 국가들이 심심치 않게 환율시장에 개입해 왔다며 볼멘소리를 해왔다.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상파울루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전 세계가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지하기 위한 통화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통화전쟁의 실체를 드러냈다.
만테가 장관은 브라질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방침도 밝혔다. 그는 "글로벌 통화전쟁이 우리의 수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위협이 되고 있다"며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달러화를 매입해 헤알화의 절상을 막겠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가 최근 추가 부양 의지를 내비친 만큼 달러화 약세에 저항하려는 자국 통화 절상 저지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환율 공방에 이머징 가세 中 지지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기업들에 일방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며 위안화 가치를 높이라고 중국 정부를 압박해왔다.
미 하원 세입위원회는 이날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기 위해 발의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법안'을 가결하고 하원으로 넘겼다. 이 법안은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 정책을 수출 보조금으로 간주해 수혜 품목에 대해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통화 약세 경쟁에 신흥국이 가세하면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중국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신흥국 통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것이 달러화의 약세 탓이라는 지적이 많은 데다 신흥국의 주요 교역 대상국이 다름 아닌 중국이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최근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에서 미국 기업인들을 상대로 "위안화 환율 문제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무관하며 정치적 이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셀소 아모림 브라질 외교장관도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브릭스(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회담 직후 로이터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특정 국가의 환율정책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중국은 우리의 주요 고객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는 게임'에 국제 공조 물 건너가나
일례로 일본 정부는 2003~04년 15개월 동안 한 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35조 엔을 매각했지만 엔화의 초강세 행진은 막지 못했다. 스위스중앙은행(SNB) 역시 지난 6월까지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15개월간 시장에 개입했지만 140억 스위스프랑의 손실을 봤을 뿐 환율 변동성은 오히려 더 확대됐다.
국제 공조가 빠진 일방적인 시장 개입은 '필연적으로 지는 게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오는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환율과 관련한 깜짝 합의는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는 만큼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주재국인 한국도 환율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으로서는 주요 교역국인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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