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빛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본시 어둠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어둠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빛은 더욱 밝게 빛난다. 우리는 나날이 고된 삶을 살고 있으나 동시에 화사한 죽음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72쪽)
소설가 윤대녕(48) 씨가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푸르메)을 출간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작가는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대하며 새삼스럽게 느끼는 깨달음과 삶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작가에게 삶은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만남으로 이뤄진 극적인 순간들의 연속이다.
표제작에서 그는 "한순간 한순간이 마치 축복처럼 왔다가 새벽의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감을 생각해본다"며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마다 매순간 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며 우연한 만남에도 저 신비롭고 불가해한 우주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리라"고 말했다.
올해로 등단 20주년을 맞은 작가의 문학에 대한 고뇌와 열정도 드러난다. 그는 "어느 날 문학이 내 삶을 구속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괴로워하다 "그 모든 뼈아픈 후회와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고 살아갈 도리밖에 없다"고 문학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문학으로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날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래, 그것뿐이었다. 지금껏 아비에게도 단 한 번 굽히지 않았던 내가 기어이 문학에 항복하고 말았다. (중략) 굶어죽지 않고 버티는 게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미덕이라는 것도 알았다."(161쪽)
"물건을 잘 사들이지 않되 웬만하면 버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작가가 오래된 지갑과 다이어리, 관광 안내서, 비행기 티켓 등 커다란 종이상자에 보관하던 '사소한' 물건들을 내다버리며 느낀 단상도 적었다.
"이제 그 상자 안에는 새로운 것들을 넣어둬야 한다는 느낌"에 상자를 정리한 작가는 비감한 마음으로 거리를 걸으며 '오늘 버려진 것들이 앞으로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나는 밤으로 변한 창 밖을 내다보며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은 시간들을 상자 안에 가둬두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과거에 집착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59쪽)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제비를 기르다', 장편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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