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진짜 쉰다는 것

2010-10-3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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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다. 잘 하면 일주일 이상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좋아라 한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대통령도 청소부 아저씨도 '이게 웬 떡이냐?' 할 게 틀림없다.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 생각없이 눈 앞에 보이는 경관, 그것이 TV 화면이건 애들 노는 모습이 건 아내나 애인의 크로즈업 얼굴이건, 자체를 바라본다는 것. 그러다 지루하면 바둑 책을 뒤적이고 교양 서적도 읽고, 어스름 저녁 무렵 맥주나 소주, 아니면 섞어서 한잔 '캬~' 들이키는 것. 맞다. 제대로 쉬는 것이다.

무념무상.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TV 리모콘 찾아 누운 자리 주위를 뒤지는 게 큰 일인 뒹굴뒹굴 일주일.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좋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열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도 하면서 눈만 깜박이며 슬금슬금 자리에 눕는 행위. 장소가 휴양림 펜션이라면 아주 좋겠고 시골 고향집 툇마루라도 너무 좋겠다. 남들 다 고향가고 우리 가족만 혹은 나만 남은 그 호젓한 내 집 안이라도 좋다.

단지 남과 부대끼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은 '쉬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천천히, 느리게 흐른다는 것이다. 시속과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의 바쁘거나 짜증난 표정에 영향 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내 스스로 저울질 하며 약간 고독하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작용을 즐기는 것이다.

최근 며칠간 시골 길을 하염없이 걷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 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쉬는 게 무언지 그 본질을 생각하며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골마을의 호젓함. 천천히 흐르는 시간.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 짜증기 없는 표정들. 그 속에 '쉼'이 있었다. 어서 서둘러 뭘 끝내야지, 뭘 해 내야지 목표하는 바가 없는 상태. 그런 '쉼'이 있었다.

불쑥, '일 하는 게 쉬는, 그런 거 없을까?' 허깨비같은 상념이 휘익 뇌리를 스쳤다. '바쁠 게 없는 마음 상태가 되다보니 별 요사스런 잡념도 기어드네?' 스스로 민망해 하면서도 뭔가 땡기는 데가 있는 상념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마치 수학자가 '푸엥카레의 추측'이나 '리만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몰입하듯, 흉내를 내 보았다.

일하는 게 쉬는 것, 즉 '일=쉼'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라, 일단 이렇게 시작했다.

'일=쉼'이니까, '일-쉼=0'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즉 '일'에서 '쉼'을 없애 죽어라고 '일'만 하다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상태, 즉 '0'이 된다면 이 가설은 '참'이 된다, 이런 잔머리를 굴리다가 '어라? 이런 예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 않아?'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 중독에 빠져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다, 한 재산 일궜지만 결국 공수레공수거 허무하게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원로 기업인. 마누라, 자식이야 한 밑천 공짜로 챙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0'인 상태가 된 그의 인생 이야기.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자였다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남을 위업마저 달성하고도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던 중 외국 출장길에 얻어 걸린 신종플루로 급사한 한 원로 정치인. 다수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는 커녕 알지도 못하는 현실.

일에 미쳐 평판 관리를 소홀히하다 억울하게 비난받거나 허무하게 무대 뒤로 퇴장당한 수많은 정치인ㆍ연예인ㆍ법조인ㆍ행정가들. 자녀를 위해 평생 일했는데 정작 자녀에게 왕따 당하는 부모들. 이들 모두 '일'에서 '쉼'을 빼 '0'이 된 인생들이다.

이만하면 '일 = 쉼'이라는 가설이 증명된 셈 아닐까? 그럴듯한 반증이 있더라도 그냥 그렇게 치자. 적어도 이번 추석 연휴만큼은 '쉬는 게 곧 일'이라고 여기자. 오랜만에 찾아온 긴 추석 연휴다. 그냥 마음 편히 즐기며 푹 쉬어 보자. 긴 연휴 만세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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