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불면서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13일 막을 내린 아시아 최대 미술시장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도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문화수준이 향상되고 경제력이 높아질수록 미술시장은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마련이다. 글로벌 위기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그러하다. 최근의 구매 성향을 보면 구매층이 다양하고, 특히 젊은 애호가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아트페어는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자리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작품들이 출품되어 동시대 작가들의 교감하는 작품세계가 무엇인지, 현대미술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이다. 그런 작품들을 감상하고 비교하면서 사고파는 시장이다.
그런데 왜 ‘현재’와 ‘미래’는 있고 ‘과거’의 우리미술은 없는 걸까? 한국시장을 찾은 외국 화상이나 컬렉터들에게 우리 고유의 미술을 선보이고,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텐데 다 어디 숨어있는 걸까. 1970~1980년대만 해도 그림 하면 ‘여백의 미’를 자랑하는 수묵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미술시장에는 울긋불긋하게 화장을 잔뜩 한 서양화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아트페어에는 남정 박노수나 운보 김기창의 수간채색화 정도가 한 둘 끼어 있을 뿐, 미술시장에서의 고미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고미술’은 미술시장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과 다르지 않다. 고미술은 옥션에 가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들의 몸값은 바닥이다. 50,60대 사람이면 그림은 좋아하지 않아도 이름만은 알 수 있는 소치 허련이나 남농 허건의 4절 크기의 그림을 100만원이면 살 수 있다. 소장자의 작품을 전문으로 재판매하는 오픈아트에는 미산 허형의 묵난도가 25만원에 나와 있다.
작품을 오랫동안 소장했던 분들이 되팔려고 보면 중고품수집상에게 울며겨자먹기로 몇 만 원에 넘기는 형편이다. 편의상 고미술이라고 했지만, 동양화 또는 한국화, 문인화 등 경계도 모호한, 수묵화는 정말 액자값 대접도 못받기도 한다. 분명 우리 선조들이 그려왔고, 우리나라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인데 왜 제값을 못받는 걸까. 동양화든, 한국화든, 문인화든 어쨌거나 ‘우리나라 그림’인데 푸대접을 받는 것은 분명 어딘가 잘못됐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강하다. 우리 것, 곧 한국적인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화된 무기로 경쟁력을 확보한다.
김치나 된장 같은 음식 하나까지도 서로 자기 나라가 뿌리라고 우기는 것은 바로 그 주도권 하나만으로 경쟁력에서 우위에 설 수 있으며, 국민의 자존감까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그만큼 아끼고 다듬고 가꾸어야 할 명분이 절대적이다.
앞으로 우리의 국력이 강해질수록 우리 문화에 대한 외국의 관심도 커질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 고유의 작품에 대한 가치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굳이 우리 것을 아끼자고 애국심을 들출 것도 없다. 지금 100만원 대의 작품들이 한때는 그 몇 배에 거래되던 그림이다. 그런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은 대부분 작고했기에 작품수가 한정적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고미술보다 나은 투자대상도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