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역사상 ‘포스트(post) 현대그룹’ 만큼 모진 풍파를 겪은 그룹도 없다. 여기서 ‘포스트 현대그룹’이란 정주영 회장이 은퇴한 후 고(故) 정몽헌 회장이 계승하고, 현재의 현정은 회장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현재의 현대그룹이다.
창업주의 죽음과 뒤따른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 그리고 계열 분리.. 마치 드라마 같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정몽헌의 현대그룹은 더 이상 83개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최대 규모의 그룹이 아니었다. 재계 순위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정몽헌 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인 대북사업의 끈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는 지난 2003년 대북송금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연루되며 현직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상 초유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 이듬해 현정은 회장은 이어지는 경영권 다툼과 경영상 위기를 극복한다. 하지만 최근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채권단과 범 현대그룹과의 사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현대그룹의 10년 역사= 최근 계동에서 연지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현대그룹의 역사는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2004년 8월 18일 현대그룹 2010 비전선포식에서 현정은 회장이 깃발을 흔들고 있는 모습. (사진=현정은 홈페이지)
1946년 정주영 창업주가 설립한 현대그룹이 있지만 새로운 모습의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주력 계열사를 모두 뺀 채 시작됐다.
창업주 정주영이 작고하기 1년 전인 지난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정몽구-정몽헌 사이의 그룹 주도권 다툼으로 그해 8월, 자동차 10개 계열사가 떨어져 나간다. 이어 정몽준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그룹을 이탈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1999년 대우그룹 부도 사태로 이어진 한국 경제의 암운은 현대그룹의 위에도 드리우게 된다. 2001년 정몽헌 회장은 자신이 대표직을 맡아 애지중지 키워 오던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를 채권단의 손에 넘길 수 밖에 없게 됐다.
최근 현대중공업에 인수된 현대종합상사와 현대투자신탁, 현대정유 등 우량 계열사도 이 때 워크아웃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의 현대그룹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현재 현대그룹은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아산, 그리고 현대증권, 현대택배,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네트워크, 현대유앤아이의 9개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대북송금 특검과 정몽헌 회장의 비극=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주영 창업주의 마지막 유업(遺業)이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에 또 다른 비극을 안긴다.
2003년 2월 정몽헌 회장(오른쪽)이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정몽헌 홈페이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도중 대북송금과 정치권 비자금 사건 등이 터지며 정몽헌 회장은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에 상심한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 계동 사옥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갑작스런 작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몽준 회장 등과 화해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며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부친의 뜻을 이어 대북사업을 주도해 온 인물로 외신에서도 심도 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시련은 계속 이어졌다. 홀로 남게 된 미망인, 현정은 현 현대그룹 회장은 상복을 벗자마자 창업주 정주영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 지키기에 나서야 했다. 이른바 ‘시숙의 난’이다.
그 이듬해 공식 회장으로 취임한 현 회장은 선대 회장과 남편의 뜻을 이어 그룹 경영정상화와 대북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며 ‘철의 여인’, ‘뚝심의 CEO’란 별칭을 얻는다.
지난 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의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상선의 지분 26.68%를 전격 인수하며 또다시 ‘시동생의 난’을 겪게 된다.
이는 최근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한 현대건설의 인수전과 맞물리며 또다시 경영권 다툼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8년 말 글로벌 외환위기에 따른 현대상선의 재무구조 악화로 채권단으로부터 재무구조약정 체결 압박을 받으며 그룹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대북사업… 금강산관광부터 개성공단까지= “금강산 관광은 계속돼야 한다.”
2004년 7월 2일 금강산호텔 개관식 전경.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현정은 회장은 지난 4월 12일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신사옥에서 임직원들에게 “선대 회장께서 물려주신 그룹을 잘 키워 글로벌 선도그룹으로 한 단계 성장시키고, 대북사업으로 통일의 초석을 놓는 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역사적 사명”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하지만 대북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2002년 대북 로비자금 송금 의혹, 2006년 북핵 사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올해 천안함 침몰 사태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기업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실수’였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그룹에 있어 대북사업은 선대 회장의 마지막 유업(遺業)이라는 점, 국내에 이를 대체할 만한 기관·단체가 없다는 점에서 단순한 경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1998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 세계가 주목한 가운데 벌인 ‘소떼 방북’으로 물꼬를 튼 대북사업은 2001년 정주영 작고 후에 ‘대북 전도사’를 자임했던 고(故)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현 회장으로 이어졌다.
2004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은 어려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관광 역시 지난 2005년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남북관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은 지난 2008년 7월 한 관광객이 북한국에 피살되며 지금까지 잠정 중단돼 있다.
◆정몽헌 회장은 누구= 정몽헌 회장(1948~2003년)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여섯째 아들이다.
1975년 현대중공업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현대상선.현대전자.현대엘리베이터.현대건설.현대종합상사 등지의 대표이사를 거쳤다.
연세대 국문과 시절 문과대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꼼꼼하고 학구적인 성격으로 아버지 정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적인 정주영 창업주가 1998년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 회장과 함께 그룹 공동 회장으로 앉힌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1992년에는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를 창립해 단기간에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대열에 올리는 등 아버지를 빼닮은 추진력과 뚝심을 과시했다.
1998년 맡형 정몽구 회장과 함께 그룹 공동 회장직을 맡아 그룹 경영에 참여했으나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형제들과 계열 분리했다.
정몽헌 회장 가족 모습. 왼쪽부터 차녀 영이, 현정은 회장, 아들 영선, 장녀 지이, 고(故) 정몽헌 회장. (사진=정몽헌 홈페이지) |
자녀로는 장녀 정지이, 차녀 정영이, 아들 정영선 셋이 있다. 장녀 정지이는 현재 현대그룹의 IT 계열사인 현대유앤아이(U&I)에서 전무로 재직 중이다.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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