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영배 기자) 자금조달 문제로 사업주체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법정 다툼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부지 소유자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20일 지난 16일까지 계약을 준수하는 내용의 자금조달 방안을 제시해줄 것을 삼성물산측에 요구했지만 기일이 경과하도록 끝까지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며 사업 출자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에 대해 사업협약상 의무이행 최고를 통지하는 한편 토지매매 중도금 등 7010억원에 대한 납부이행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사업협약상 의무이행 최고란 계약서상 정해진 기간내 대금 등의 지불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상대측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을 미리 통보하는 것을 말한다. 계약해지를 위한 사전 법적 조치로 계약 해지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코레일이 이날 사업협약상 의무이행 최고와 납부이행 청구소송을 동시에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은 드림허브PFV와 주간 건설회사인 삼성물산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코레일은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30일 이내에 연체중인 중도금 납부와 4차 토지매매계약 체결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에 준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며 "사업자 컨소시엄 구성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업을 실질사적으로 이끌어 온 삼성물산이 책임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열되는 책임공방
코레일이 삼성물산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삼성물산은 드림허브PFV가 풀어야 할 문제이지 삼성물산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은 17개 건설컨소시엄의 대표사이기는 하지만 드림허브PFV의 지분 6.4%를 보유한 투자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코레일의 납부이행 청구소송과 관련해서도 삼성물산 관계자는 "드림허브PFV의 1대주주는 25%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바로 코레일"이라며 "드림허브PFV에 대한 법적조치는 곧 자신에게 소송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드림허브PFV는 오는 22일께 이사회를 열고 재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출자사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뾰족한 해결책 제시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드림허브의 자산운용사인 용산역세권개발(주) 관계자는 "이번주 열리는 이사회에서 어떤 방안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용산개발사업이 차질없이 이뤄지기를 기대할 뿐,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레일의 사업협약상 의무이행 최고 통지가 이뤄지면 코레일은 한 달 후인 8월20일 경이면 일방적으로 사업계약 해지를 선언할 수 있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주간건설사 교체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코레일이 납부이행 청구소송을 동시에 제기한 것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8월 20일 전후로 코레일이 사업계약해지 결정권을 갖는다 해도 추가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협상의 카드를 남겨두면서 드림허브PFV와 삼성물산측에 코레일이 요구조건을 수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9월17일이 이자지급 시한이어서 이 때까지 이자를 납부하거나 새로운 대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코레일이 의도와 관계없이 드림허브PFV가 부도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대안은 없나
31조원에 달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금융위기 여파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24일 열린 드림허브 이사회에서 토지대금 중도금 4조7000억원 지급을 준공시점까지 무이자로 연기하고 기존 608%인 용적률을 800%로 상향 조정, 부족자금은 출자사 지분별로 2조원 증자 등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사업협약조건을 지난해 한 번 변경했던 만큼 추가 변경은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용적률 상향조정도 쉽지 않다. 서울시가 용적률 상향 조정은 특혜시비가 나올 수 있다며 일찌감치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게다가 '6.2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 소속 의원이 서울시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용적률 상향조정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강르네상스의 핵심 프로젝트이지만 민주당은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림허브PFV 출자사 내부의 불협화음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출자사 지분율대로 증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자는 삼성물산의 제안에 대해 재무적투자자(FI) 등이 반대하는 등 서로 이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만약 좌초된다면 비슷한 대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출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서울시 역시 서부이촌동 통합개발 등 용산 개발에서 자유롭지 않은 입장"이라며 "어느정도 사업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숨통을 트여주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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