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 밭에 앉아 신발을 고쳐 신거나, 자두나무 아래서 손을 들어 갓 끈을 고쳐 매지 말란 얘기다. 의심받을 짓을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지난 2005년 퇴직연금제도가 시작됐다. 이 제도는 인구노령화와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가속화로 향후 빠른 성장세가 기대됐다.
은행·보험·증권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이 사업을 유치하게 위해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퇴직연금을 가져가려는 사업자 간 경쟁은 뜨거워졌다. 심지어 예금금리의 2배가 넘는 연 7~8%의 상품까지 출시했을 정도니.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퇴직연금 상품의 보장이율을 5% 미만으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시장은 냉소를 날렸다. 금감원이 자신들의 이권을 모두 챙긴 뒤 규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해 11월 13개의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정하고 7~8%의 고금리 상품에 가입했다.
한 퇴직연금사업자 임원은 사석에서 "금감원은 이미 퇴직연금 고금리 상품에 가입해 놓고 이제서야 규제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금감원을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사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퇴직연금 시장이 과열 양상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사업자 간 출혈경쟁이 있을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는가하면 지난해 9월에는 시장점검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규제조치는 금감원이 퇴직연금에 가입한 뒤에야 이뤄졌다.
금감원이 잘 익은 오이 밭에 앉아서 오이를 땄는지, 신발을 고쳐 신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금감원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금융감독권을 갖고 있는 기관이라면 흙길에서 신발을 고쳐 신었어야 했다.
금융 감독이란 시장의 신뢰를 토대로 움직인다. 신뢰가 없다면 감독이란 권위와 강제권은 힘을 잃는다.
금감원이 지난 2008년 김종창 원장을 맞으며 '고객중심의 사고, 고도의 전문성, 신뢰받는 금융감독'이라는 비전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이 진정 정당하고 신뢰받는 감독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되길 위해서는 2년 전의 다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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