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금>2048년의 삼성

2010-06-28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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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성이 창립 100주년을 맞는 38년 후인 2048년을 가상으로 서술한 글이다. 삼성의 미래를 장미빛으로 서술한데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삼성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는 저자들의 희망이 담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반년에 걸쳐 삼성 100년 DNA를 집필하고, 이를 위해 삼성과 삼성 오너일가를 취재하면서 앞으로 삼성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감히 예상한 글이기도 하다. 물론 삼성의 발전이 아래 서술한 내용보다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의 발전이 이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2048년 3월 22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2046년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는 6만석에 달하는 관중석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운동장 한쪽에 위치한 연단에는 한 노신사가 마이크 앞에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은 그룹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삼성을 이끌어온 지난 세월을 회상하고 있었다.

강단 옆에는 아들 지호와 딸 ??, 동생인 이부진 회장과 이서현 회장, 그리고 범 삼성가를 이끌고 있는 사촌형제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삼성 임직원들과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온 축하사절들의 환호성 소리와 함께 그는 천천히, 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기념사를 읽어 나갔다. "100년 전 대구의 작은 건물에서 시작한 삼성이 오늘로 창립 100년을 맞았습니다. 그간 삼성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경제를 이끌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삼성 가족 여러분들과 함께 고생한 협력업체 여러분의 헌신, 그리고 국내외 수많은 고객들의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2001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삼성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철저히 준비해온 위기관리 능력으로 오히려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8년 이후로 징크스가 돼버린 10년 주기의 위기 때마다위기에 빠진 글로벌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때는 주변의 질투와 시기도 있었지만 상생의 리더십을 통해 이들과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었다.

삼성의 중추역할을 해온 삼성전자와 관련 계열사들은 전세계 전자 기술과 시장을 주도했다. 지난 30여년 동안 전자 계열사들은 그동안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돼온 부품.소재.장비 등 후방 산업에 힘을 쏟으면서 샌상단계 이전부터 완성제품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전자산업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자신이 삼성전자 부사장 취임 이후 역점을 뒀던 소프트웨어 산업도 20년 전부터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드웨어에만 강한 반쪽짜리 IT기업이라는 평가도 사라진지 오래됐다. 원천기술을 통한 재산권 사용료 수익도 제품 판매로 인한 매출액에 근접할 정도가 됐다. 경영에 참여한 이후 그가 주도한 '제3의 창업'이 실효를 거두면서 삼성전자는 과거 제조업을 넘어 새로운 기술과 가치를 전달하는 문화기업으로 탈바꿈한 것.

삼성의 금융업 역시 미국 월가가 주도하던 성장과 이익 위주의 팽창경쟁을 넘어 '따뜻한 금융'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 국제 금융은 1980년대 이후 무한 팽창 경쟁으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 불안정했다. 고위험.고수익 위주의 경영이 결국 화를 자처한 것. 국내 보험사업에 머물렀던 삼성은 2010년 중반 이후 위기에 처한 해외 금융기관을 인수하고, 착실한 성장을 통해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밖에 조선과 건설, 화학, 생활서비스 등을 담당하고 있는 계열사들도 더욱 큰 성장을 지속했다. 지주회사와 서비스산업으로 분리된 이후 삼성에버랜드는 디즈니랜드의 아성에 도전하는 세계적인 테마파크로 성장했다. 세계 각지에 총 10개에 달하는 에버랜드가 들어섰다. 에버랜드 캐릭터인 라시언, 라이나, 티저스 등은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패션.디자인 사업 역시 성공을 거듭했다. 빈폴은 전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의류 브랜드로 떠올랐다. 로가디스와 구호도 각각 남성복과 여성의류 부분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품질과 디자인을 갖춘 브랜드로 사랑받고 있다. 이들 사업이 성공한 것은 이재용 회장의 두 동생인 에버랜드그룹 이부진 회장과 제일그룹 이서현 회장의 탁월한 경영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그동안 경영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국제 경제질서가 빠르고 바뀐데다 여러 업종을 총괄하는 방대한 규모의 삼성을 이끌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삼성을 창업하고 한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할아버지와 이러한 삼성을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린 아버지. 그들의 뒤를 이은만큼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야 한다는 중압감도 컸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산업의 디지털 트랜드를 선도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데는 각 부분에서 뛰어난 경영을 이끌어준 전문경영진들과 밤샘연구도 마다하지 않던 연구진들의 노력이 컸다. 물론 불량률을 최저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제조현장에서 여러 방안을 제시한 생산직 직원들의 노력도 컸다. 경영지원을 담당하는 구성원들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홍보와 마케팅 부문의 인력들도 세계 속의 삼성을 알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미국 비즈니스지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브랜드 파워 기업 1위에 삼성이 4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들의 공이 컸다.

지난 수십년 간의 삼성의 변화와 업적을 생각하면서 사전에 준비한 연설문을 다 읽고난 후에도 이재용 회장은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살며시 떨리는 어깨도 이날따라 매섭게 부는 바람 탓으로 보였다. 다만 뒤에 앉아있는 범 삼성가 사람들만이 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범 삼성가의 맏형인 CJ그룹 이재현 명예회장과 사촌동생인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조용히 다가와 그의 곁에 섰다. 이들 역시 그동안 각각 식음료.미디어 부문과 유통사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이끌어온 터라 이재용 회장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 두 사촌형제가 눈짓으로 그만 자리로 돌아가 앉을 것을 권유했지만 이재용 회장은 그들의 청을 조용히 물리치고 다시 마이크에 가까이 다가섰다. 100년 기업 삼성의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태동한지 100년이 지난만큼 이제는 이후 100년을 준비하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먼저 저는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후배들이 삼성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역할을 맡으려 합니다. 전자 및 제조산업은 아들인 이지호 사장에게 맡기려 합니다. 아울러 금융업은 딸인 이??사장이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물론 이들 두 사장이 아직 나이가 어리고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와 제가 그랬듯이 이들 역시 잘 해내리라 믿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문경영인 체제와 오너 경영 체제의 조화를 이룬 삼성경영 철학을 지속함으로써 삼성은 다시 한번 세계 경제의 도약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뒤를 돌아봤다. 사전에 언질을 안 한 까닭에 두 자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여명의 사진기자들이 터뜨리는 플래시 소리가 더욱 잦아지기 시작했다. 45년 전 삼성전자에 몸을 담은 이후 끊임없는 강행군을 지속해왔던 자신만큼 앞으로 두자녀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랜기간 삼성을 이끌기 위해 준비해온 자식들은 이미 경영 일선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확신을 하고 있던 터라 걱정은 크지 않았다. 또한 오너 일인체제에서 벗어나 뛰어난 인재들을 곳곳에 포진한 삼성의 앞날이 더욱 밝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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