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소방서 미국 불 난 형국 금융 이어 민생위기 도래할 듯
정부와 기업 가계 한마음 위해 가정의 대신 전문의들 배치해야
100년 가까이 팍스 아메리카의 위세를 떨쳐 온 미국경제가 지난해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 우량 담보 주택대출)의 덫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도 그간의 과로와 과식 탓이다. 엘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23일 미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파생금융상품을 고안해 낸 월가의 게걸스런 탐욕으로 지목했다. 전세계의 정치, 군사, 외교분쟁에 개입하고 IB(투자은행)을 내세워 세계각국의 이권에 손댔던 미국이 과로와 과식으로 환세기(換世紀)형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나아가 미국은 1세기 동안 글로벌 소방수 역할을 해왔다. 미국 발(發) 금융위기는 마치 소방서에 불이 난 격이다. 소방서에 불이 났으니 온 마을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고 있다. 소방서에 인접한 데다 인화물질(파생금융상품)을 공유해온 유럽으로 불길이 먼저 옮겨 붙은 것은 뻔한 이치다. 한국은 무지한 탓에 파생금융상품의 연결고리는 적지만 정치, 군사, 외교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과 직선도로로 연결돼 있는 형세다. 그래서 한국민들의 공포감이 더 한 듯 하다.
자본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방의 금융화재를 진화하려고 주식매도와 달러반출에 나서고 있다. 후안강(胡鞍鋼) 중국 칭화(凊華)대 국정연구센터 소장은 “중국은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말을 듣지 않고 자주적 결정을 해온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의 사회주의식 시장경제가 미국의 민주주의식 시장경제보다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역사도 정(正)과 반(反)의 과정을 거쳐 합(合)에 다다르듯, 미국이 규제(Regulation)와 탈규제(De-regulation)의 과정 뒤에 건전한 재규제(Re-regulation)정책을 펼쳤다면 월가의 탐욕과 방임을 관리 감독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부터 자본시장을 미국 금융교과서식 IB중심으로 전환하려 했던 한국으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이른 바 ‘선생님’이 비틀거리니 한국의 정책결정에 혼돈이 올 수 밖에 없다. 금융 당국의 엇박자도 일견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 통에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피 말리는 하루살이 환율전쟁과 자금전투에 혼 쭐이 나고 있다. 이미 아마추어 정권시절 한차례 고생했던 경제 주체들은 그에 못지 않는 아마추어 정책이라고 성토한다. 위기의 진단과 처방이 타이밍을 놓쳤을 뿐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공조도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숨쉬는 생물처럼 상호신뢰가 중요한 터에 경제정책이 기업과 금융기관, 가계와 같은 경제주체들로부터 신뢰는 커녕 불신에다 성토까지 당하는 판국이니 위기 대응책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경제팀 간 엇박자는 둘째치고 새 정부 출범초기의 고 환율 정책은 어이없는 정책 실패이자 신뢰 상실의 결정판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국민은 물론 국제금융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현 경제팀으로는 위기수습이 쉽지 않다는 게 금융시장의 결론이다.
여기다 외과수술을 집도해 본 경험이 없는 가정의 수준의 정책당국자들로는 작금의 경제위기를 제대로 수술하고 관리할 수 없을 게 뻔하다. 환자들의 마음을 유연하게 달래가며 신속하게 수술을 집행할 수 있는 노련한 전문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련한 전문의 만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경제주체들을 한마음, 한 방향으로 모아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이심(李心)을 접고 민심(民心)에 따라 거국적 민생경제팀을 출범시켜야만 위기수습의 큰 가닥을 잡을 수 있고, 위기극복의 신화창조도 가능하다는 것이 시장의 주문이다. 경제는 신뢰를 먹고 사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더더욱 국민들이 잘 먹고 잘살도록 하는 게 만고불변의 천심(天心)이 아닌가. 기와한장 아끼려다가 대들보를 썩히는 100년전의 우(愚)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곽영길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