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왕 편은 이어 백성을 이끌어 가는 성인(聖人)의 자세를 설파하고 있다. 성인은 백성 앞에서 이끄는 지위에 있지만 봉사하는 자세로 태도가 겸손해야 하며, 백성보다 높은 지위에 있지만 언제나 말씨도 공손해야 한다는 것 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성인이 위에 있거나 앞에 있어도 힘들어 하거나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게 노자의 사상이다.
그간 노자 사상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가미되거나 변질되는 바람에 많은 사상적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노자가 말하지도 않은 글들이 억지 해설과 함께 노자의 사상인양 호도되어 온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반유가(反儒家)적인 내용이나 ‘귀신(鬼神)’에 관한 글자는 단 한자도 없었다. 반유가적 가필(加筆) 때문에 유가와 도가는 2000년 넘게 앙숙으로 지내 온 것이다.
덕(德)과 병(兵)에 관해서도 약간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후대에 개작(改作)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이나 ‘덕도경(德道經)’은 이제 도경(道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간 노자의 출토는 노자 사상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원본 노자’의 출토로 노자사상이 동양사상의 원조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병술년(丙荗年) 새해벽두에 초간 노자를 소개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로 황우석 미스테리와 사학법 분쟁으로 어지러운 한국의 정치, 사회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하는 답답한 심정에서다. 어지러운 때일수록 ‘백곡왕’편에서처럼, 이 시대의 성인(聖人)들이 근본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던져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론 초간 노자의 대나무 다발 속에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철학과 예술, 과학이 광범위하게 농축되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기다 천문지리는 물론 환경학과 현대 물리학까지 함께 용해되어 있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21세기 초입에 초간 노자의 출토와 재해석이 차례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놓고 아시아 시대의 재 도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해석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노자 사상의 진수는 한마디로 21세기와 같은 변화와 혼돈의 시대에도 안정을 추구하는 역동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오늘의 정치와 경제의 근본이 무엇인 지를 알려주는 역사적 가르침인 셈이다. 노자는 2400년 전 도(道)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그리곤 노자는 2400년이나 되는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초간 노자는 지난 93년 8월23일 중국 호북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의 한가한 시골마을 곽점촌(郭店村)에서 발견 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도굴꾼들이 초나라 때의 무덤을 도굴한 뒤 쓸모없다고 남겨둔 대나무 다발이 바로 초간 노자이다. 세계적 석학들이 7년 넘게 초간을 판독했고, 21세기 들어 중국에서 다양한 해설서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최초로 초간 노자의 해설서를 출간한 양방웅(梁芳雄) 선생은, “후세의 유학자들에 의해 2400년 동안 왜곡되어 왔던 노자의 인격(人格)이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됐다”고 초간 노자 출토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술수의 용어를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노자 사상의 근본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초간 노자 2부 36장 가운데, 제 1부 1장 도법자연(道法自然)은 도가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곤 이렇게 끝을 맺는다.
천대, 지대, 도대, 왕역대,(天大, 地大, 道大, 王亦大), 국중유사대언(國中有四大焉), 왕거일언(王居一焉). 인법지, 지법천(人法地, 地法天), 천법도, 도법자연(天法道, 道法自然). - 하늘도 대요, 땅도 대요, 도도 대요, 또한 왕도 대입니다. 나라 안에는 네 가지 대가 있으며, 왕은 그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은 땅의 순리에 따르고, 하늘은 도의 순리에 따르고, 도는 자연의 순리에 따릅니다.
초간 노자는 결론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당연히 자연의 순리를 어겨서는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