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충현 기자) 국내 IT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IT업체의 국내 연구개발(R&D)센터 '유명무실'화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거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가 경쟁적으로 글로벌 IT업체 R&D 센터를 유치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검증은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글로벌 IT업체들이 R&D센터 설립을 국내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한 것과 정부의 전시행정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목소리도 있다.
옛 정통부 산하 기관에서 근무했던 업계 관계자는 "사실 글로벌 IT업체가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할 이유는 크지 않았다"며 "우리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니까 R&D센터 개소식을 화려하게 열어 생색만 내고 실질적인 활동은 미미한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책 연속성 부재
글로벌 IT업체들의 국내 R&D센터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우리나라 관련 정책의 연속성 부재도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통부와 산자부 등 IT R&D 센터를 주도적으로 유치했던 관련 부처들이 현 정부에서 지식경제부·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 분산·통합되면서 정부의 관리 기능이 약화된 것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 R&D센터에 대해서는 현재 옛 산업자원부가 유치했던 일부만 파악하고 있다"며 "정통부와 관련됐던 IT R&D센터에 대해서는 투자 유치 규모와 성과 등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IT R&D 부문은 부처 통합 당시 지경부로 모두 이관된 상태"라며 "방통위에서는 관련 부분을 관리 감독하거나 현황 파악 등의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초기 부처 통폐합 과정에서 글로벌 IT업체들의 국내 R&D 센터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가 모호해 진 셈이다.
특히 정부가 각종 지원을 제공했다는 점도 글로벌 IT업체 R&D 센터 유명무실화의 또 다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글로벌 IT업체 R&D센터의 대부분은 국내 설립 당시 정부로 부터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급여 일부 등을 지원받은 것을 알려졌다.
산자부의 경우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 3월말까지 '외국 R&D센터 유치를 통한 인력양성 사업'을 통해 총 약 158억원을 지원했다.
이 지원비에는 R&D센터에 신규 고용한 전담인력의 인건비 및 교육 훈련 관련 체제비 등이 포함돼 있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글로벌 IT업체 R&D센터들을 지원한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로벌 IT업체들은 본사 방침 등의 이유를 들어 국내 R&D센터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글로벌 IT업체 R&D센터들이 국내 관련 업계에 '눈총'을 받는 것은 설립 당시에는 '떠들썩'했던 것과 달리 슬그머니 활동을 축소하거나 철수했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글로벌 IT업체 R&D센터들은 설립 당시 국내 정부 인사 등과 언론 등이 참석해 대대적인 행사를 열고 국내 업체에 기술이전, 대학 등과 공동 연구, IT전문 인력 양성 등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R&D센터 설립 이후 실질적인 연구 성과와 글로벌 IT업체들의 실질적인 투자 규모 등은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글로벌 IT업체 R&D 센터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면서 IT업계 일각에서는 '차라리 국내 업체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IT업체가 설립했던 국내 R&D센터는 한국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사업전략의 일환이었다"며 "정부가 글로벌 IT업체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보다 기술 경쟁력이 있는 국내 업체의 육성을 위한 지원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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