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고같은 비극은 이제 끝내자
6·25 전쟁 발발 당일 북한군의 기습에 옹진 반도에 있던 피난민들과 국군병력은 6척의 화물선으로 연평도를 경유해 군산항으로 긴급히 수송작전을 실시했다.
그 중 한척이 북한군 해군함정의 조준망에 포착됐다.
주포를 겨눈지 몇 분이 지나도 발포하지 않아 선장이하 탑승객들은 생사가 오가는 숨막히는 시간을 마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한 해군함정은 겨눈 주포를 갑자기 하늘로 올리고 현장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분명 북한 해군함정 내에서는 열띤 토론이 있었을 것이다.
‘비무장 화물선을 격침시키면 민족적 비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저 피난민 속에는 후퇴하는 국방군도 많지 않은가’, ‘화물선 하나 격침시켰다고 전쟁 승부가 결정나지 않는다’ 등.
항일투쟁 경험이 많은 조선의용군 출신 초기의 인민군 간부들과 일본·소련에서 해군 교육을 받은 해군 간부들 가운데 그 당시 기준으로는 지식인층이 적지 않았다.
북한은 6·25 전쟁 중에 비교적 우수한 인적자원이 거의 소진됐다.
정전이후부터는 김일성부자 일당독재와 우상화로 길러진 북한 군간부들이 민족의식과 동족의식 보다는 상대를 적으로 보는 적대의식과 투쟁, 상대체제의 전복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동·서독은 이념상 서로 대립해 있었지만 동·서독의 고급장교단에서는 과거 2차대전 시 나치스 치하에서 선·후배 등으로 서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 아무리 정보전이 치열해도 서로의 부하를 비인간적으로 심하게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자국의 법대로 발포, 체포해도 같은 게르만 민족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아픔을 공유해 왔다.
우리의 경우 북한 화물선 침몰 시, 우리 해역으로 표류한 북한 어선에게는 구조 작업은 물론 충분한 식량과 선박 유류도 제공해 왔다.
소말리아 해적에 북한 화물선이 피랍 위기에 있을 때에는 우리 해군과 헬기가 무사 항행을 보장하기도 했다.
이번의 천안함 사고가 북한의 공작과 납치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기를 기대하고 싶다. 만약 원인을 북한이 제공한 것이라면 개전에 준하는 무리수를 강행한 셈이 된다.
북한이 총력전으로 비화하지 않으면서 찔러보기에 적당하다고 NLL 분쟁해역에 귀한 생명을 대상으로 유린행위를 지속한다면 동족으로서도 참을 수 없고 인류평화를 위해서도 단연코 북한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남·북한의 인구 증가율은 0.78~1.25%에 오가는 수치로 남녀 모두가 귀한 자식들이다.
남·북한 공히 입대한 군인은 목숨을 팔아 먹고 살기 위해 입대한 검투사 같은 생명체가 아니다.
조국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복무기간 동안 군복을 입고 있다.
그리고 군간부는 그 귀한 부하들의 생명을 위탁관리하는 엄중한 책임을 맡고 있다.
참군인으로 목숨을 버리며 위험에 앞장 섰던 우리 해군 용사들과 6·25전쟁 당일의 이름 모르는 북한의 해군함장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같은 동족으로 이 사고가 더욱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우상화 독재를 반세기 이상 끌고 있는 북한에 6·25 전쟁 당시의 해군함장과 같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그러한 인재가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을 기대하는가.
우리 군은 안전사고나 교전사태에나 언제나 최선을 다할 전방위적 대응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