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중앙은행의 역할에 비해 권한은 미미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총재는 25일 서울 남대문 한은 본관에서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불안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인의 존재여부를 판단하고 시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며 "중앙은행에 자산가치 안정과 금융안정 등 숙제는 많이 주고 있지만, 수단은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퇴임을 1주일 앞둔 이 총재가 한은법 개정안 처리 지연에 대해 아쉬운 속내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금융안정을 위해 상황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정부 자료라도 보완해달라는 측면에서 조사권 얘기가 나온 것"이라며 "양해각서(MOU)로는 정보 욕구가 다 채워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한은 조사권 요구에 대해 (정부가) 감독권으로 보고 불편해하지만, 조사권을 통해 더 얻어질 것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갖고있지만 금융기관의 부실 정도를 판단하기 어려우며 (지원을 할 때는) 소문이 나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며 "평소에 감을 잡고 있어야 기본적으로 건실한지 나쁜 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시스템을 묻는 질문에는 "올해 금통위원 3명이 바뀌고 과거에도 금통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한꺼번에 바뀌었다"며 "금통위원의 임기를 더 늘리고 1년에 1명씩 바뀌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자산가격 안정 기능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유동성 문제에 나설 수 있지만 상환능력 문제는 나설 수는 없다"며 "통화량이 부족할 경우 잠시 대출을 해 줄 수 있지만 쓰러지는 은행을 지원하는 것은 안 되며, 국고로 들어올 돈이 줄어들면 문제다"라고 말했다
적정 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상당기간 말할 수 없다"며 "서민이 대출을 받는데 조금 부담스러운 수준이어야 하지만, 그 수준이 얼마인지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또 "논의와 토론을 거쳐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일단 지켜야 하며 열석발언권도 법에 있다"며 "만약 법이 잘못되었다면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42년간의 한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지난 1972년에 있었던 1만원권 발행 무산과 1997년 한은법 개정 관련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1992년 투신사에 대한 특별융자(특융) 건 등을 꼽았다.
이 총재는 "4년 전 기대치를 많이 낮춰서 중간에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고 마지막에 점수가 높아져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며 "조금이라도 그랬다면 다행"이라고 퇴임을 앞둔 소회를 나타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