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투는 지난 24년간 투자한 벤처기업만 520여개에 이른다. 이 중 120여개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지난 2008년말 코스닥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해 주목 받았던 nhn도 (포털사이트 네이버)도 한기투의 손을 잡고 성장한 기업이다. 이밖에도 메가스터디, 한글과컴퓨터, 마크로젠 등 이른바 '스타' 기업들이 한기투의 투자자금을 밑거름으로 성장했다.
◆한국 벤처캐피털 역사와 함께 태어나다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현 KTB)는 한국 정부가 세계은행(IBRD)의 조언으로 만든 과학기술부 산하 회사였다.
1980년대 세계은행은 한국이 성장하려면 자체적인 기술 개발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만 전담하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 결과로 1986년 KTB가 만든 국내 최초 전문 창업 투자 회사가 1986년 바로 한국기술투자다. 당시 투입된 자본금은 20억원이었다.
초기 한기투의 역할은 단순했다.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자금을 대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발굴과 자금 조달에 노하우가 생기면서 다른 투자기관들과 연계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하는 등 사업 규모가 커졌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 마케팅, 기업공개(IPO), 법률, 세무, IR(기업공개) 등 각 분야에 걸쳐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돼 투자 기업의 가치를 배가 시키는 역할까지 도맡게 됐다.
특히 외환위기(IMF) 여파로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던 1999년에 한기투는 더욱 빛을 발했다. 기업구조조정(CRD) 및 인수합병(M&A)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업계 최초로 2080억원 규모 기업구조조정펀드를 결성,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 2007년에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교과부가 주관하는 '제2호 과학기술사모투자전문회사(PEF)' 운용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업계 '최초'로 주목되는 한기투의 성과
벤처캐피털 업계 최초로 출발한 이력 때문에 한기투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수시로 따라다닌다.
설립 1년만인 1987년에 50억원 규모로 한국 최초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한 이래 1989년 벤처캐피털 업계 처음으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1990년에는 영국 배링(Baring) 그룹의 1300만 달러 외자유치에서 첫 성공을 거뒀다.
또 1999년에는 2080억원 규모의 한국 최초 기업구조조정전문조합을 결성했고, 2005년에는 업계 처음으로 중동 해외CB(전환사채) 약 1000만 달러를 발행했다.
이어 2008년에는 국내 첫 중동 국부펀드 운용사로 선정되면서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에 3억 달러를 유치했다.
◆설립이래 최고 '성장통' 겪는 시기
한국기술투자는 최근 설립이래 최고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난 2008년 한기투의 세계화를 위해 설립한 지주회사 KTIC홀딩스가 화근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기투의 발목을 잡았다. KTIC를 설립하기 위해 해외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일본계 투자금융그룹 SBI코리아홀딩스를 제외하고 중동, 중국, 일본, 싱가포르, 유럽 등 자금 지원을 약속했던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투자를 포기했기 때문.
이에 SBI코리아홀딩스의 지분율이 67%까지 올라가면서 경영권 문제가 불거졌다. 당초 SBI코리아홀딩스의 지분율은 20%였다.
처음부터 두 회사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SBI홀딩스가 투자금 회수를 요구하자 한기투는 180억원을 들여 코스닥상장사인 한국창업투자(현 KTIC글로벌투자자문)를 인수했다. KTIC홀딩스를 KTIC글로벌과 합병시켜 우회상장 시킬 계획이었던 것.
그러나 SBI홀딩스는 2009년 10월 임시주주주총회에서 서일우 KTIC홀딩스 대표 등 서 회장 측 이사를 모두 해임하고 SBI코리아홀딩스가 추천하는 이사를 그 자리에 앉히는 등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SBI코리아홀딩스 측은 KTIC글로벌의 주가조작 의혹과 M&A시도 등에 따른 검찰조사 등으로 회사 투명성 훼손됐다며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KTIC 경영권을 인수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여기엔 24년간 일궈온 한국기술투자의 경영권도 포함돼 있다.
서갑수 회장은 "KTIC홀딩스의 부실을 근거로 한국기술투자의 경영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반드시 한기투가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만은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리사로 근무한 차남 서일경 KTIC이사도 서 회장을 지원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서일경 이사는 "한국 벤처캐피털의 대명사인 한국기술투자만은 외국자본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SBI홀딩스가 KTIC홀딩스 내부 직원들과 결탁해 악의적으로 주가를 하락시키는 등의 주가조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한기투 경영권을 되찾게 되면 우호적 투자자에게 양도할 계획이다.
그는 SBI홀딩스와의 화해 및 재협상 가능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SBI홀딩스와는 더이상 협업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창업 초기부터 확보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몇몇 기업들과 우호지분을 규합하고 있다"며 "조만간 SBI홀딩스를 검찰에 주가조작 혐의로 고소하고 일본 법원에도 SBI홀딩스 본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문진영 기자 agni2012@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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