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콤플렉스 바이러스

2010-01-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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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열등감 ㆍ 劣等感, 열패감 ㆍ 劣敗感)가 영웅을 만든다고도 하지만 사회 생활의 정상적인 질서를 어그러뜨려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비근한 예로 조직 내의 의사 결정에서 특정 조직인이 개인적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에 해로운 의사 결정을 끝까지 주장하는 경우. 직장 내에서 흔히 있는 일인데, 조직은 야속하게도 그 이상한 의사결정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며 우르르 휩쓸린다.

정직한 직원이 아무리 해악을 설명해도 사람들은 쉬쉬하며 되려 면박을 준다. "조직이라는 게 다 그런 거야..." 십중팔구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두 눈 멀쩡히 뜬 거 보고도 코 베가는' 이런 일들은 어떤 조직에서건 비일비재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현실이 대개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잘못된 의사 결정의 원흉이 자기 콤플렉스를 고백한 뒤 잘못을 뉘우치며 물러나거나 혹은 강제로 쫓겨나지만 현실에선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잘못된 의사 결정을 번복하려는 사람이 서서히 고립되다 된통 당하는 결말이 90% 이상이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결정이 옳은 거였는데 네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거겠지" 아니면 "설마 보는 눈이 얼만데 그런 일이 있을라고..." 이런 반응이다. 하지만 아니다. 개인적 콤플렉스 때문에 왜곡된 의사 결정을 하는 예가 공중화장실 가는 횟수보다 많다는 걸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이런 콤플렉스의 실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대개 출신 지역, 학력, 외모, 재산, 실력, 성(性) 등이다. 특히 서울로의 집중 속도가 급속했던 우리나라엔 출신 지역 콤플렉스의 비중이 높다. 공직 인사철마다 신문 사이드 톱을 장식하는 '지역 안배(地域 按配)' 주장은 대통령 고향 다른 정권이 몇 번 바뀌어도 그대로이고 지역갈등은 더 긁어 부스럼이 됐다.

학력 콤플렉스는 저급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이고 외모 콤플렉스는 성형 천국 코리아를, 재산 콤플렉스는 반기업 정서와 친북 사회주의 운동을, 실력 콤플렉스는 B급 연예 오락 문화 범람과 금융 다단계 열풍을 낳았다. 성(性) 콤플렉스는 여성 주도의 풍기문란과 감성 제일주의 풍조를 낳았다. 한마디로 사회 전반에 콤플렉스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이니 사회의 구성단위인 조직에 침투했다 한 들 이상할 게 있겠는가? 이상하긴커녕 사회 현상으로 드러난 콤플렉스 바이러스는 조직 내에서야 그 진가를 발휘하며 병증(病症)을 키운다.

조직인들의 이야기를 취합해 보면 출신 지역이건 학력이건 외모건 한 가지라도 콤플렉스가 있는 조직 내 구성원은 미필적 고의로라도 어떤 순간 조직 내 의사 결정 왜곡에 기여한 적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혐의가 약한 사람은 괜히 약점 잡힐까봐 회의 시간에 말 한마디 안하고 휩쓸린 경우일 테고 게 중 심한 사람은 당사자를 뺀 나머지 대다수의 손가락질 대상이 되고 술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조직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긴 세월 표류(漂流)한다. 조직 전체가 콤플렉스 바이러스에 전염된 탓이다. 조직원들은 서로 서로 콤플렉스의 공범이 되어 배가 산으로 가게 만들고야 만다.

그래놓고 잘못되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며 미꾸리처럼 빠져 나간다. '이런 것이 조직과 사회의 진정한 모습인가' 회의감과 좌절감이 번지는 순간이다.

콤플렉스가 나쁜 것은 퇴행 현상 때문이다. 무언가 조직의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는 성과를 만들어 딛고 다지고 올라가야 하는데, 콤플렉스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람들은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에서 조직의 기반을 부수고 깨고 흐트러트려 다들 오를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조직은 생명력을 잃는다. 요즘 미디어에 출몰하는 대부분의 이슈들에서 콤플렉스의 독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정치인과 전문가, 법조인을 포함한 고학력 엘리트들에게서도 지력(知力)으로 극복하지 못한 태생적 콤플렉스가 엿보인다.

콤플렉스는 연예인 성형 고백처럼 속 시원히 털어 놓으면 그만인데 너무 깊이 인이 박혔는지, 국가 조직의 기준마저 뒤흔들어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희망에 들뜬 지 불과 며칠만에 익숙한 불안감이 밀려들고 있다. 눈 치우듯 이 불안감도 어서 치워야 할 텐데 걱정이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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