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벽두 금융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KB금융 회장 내정자 자리를 내놓으면서 금융권은 물론 금융당국 역시 후폭풍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KB금융이다. 신년에도 회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게 됐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한다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했을 때 조속한 처리는 힘들 전망이다.
신한금융을 비롯해 하나금융 등 다른 금융지주사 역시 상당한 부담속에 새해를 맞이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편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이른바 금융권 '빅뱅'을 앞두고 경영전략을 확정짓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 회장 재선임 당면과제...강정원, 행장직도 사임?
3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KB금융은 빠른 시일 안에 회추위를 구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회추위의 구성과 절차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KB금융은 회장 후보 공고에서부터 면접까지 모든 과정에서 시간여유를 두고 투명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강 행장과 함께 회장 후보로 선정됐던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과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후보 사퇴와 면접을 거부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촉박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회추위 멤버는 기존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됐던 것에서 외부 인사를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이 막강한 권력으로 '무소불위'라는 비난을 받은 만큼 외부 인물을 통해 후보 추천에 대한 공정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뒤숭숭해진 내부 분위기를 추스리는 것도 당면과제다. 강 행장이 회장대행을 맡은 직후 인사를 단행했지만 추가 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 행장 역시 지난달 퇴임의 변을 통해 조직안정이 급선무라고 밝힌 바 있다.
부회장직과 회장 대행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이번 사태로 강 행장의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부담이다.
일각에서는 행장직까지 내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11월 그룹 임원 워크샵을 통해 올해 경영전략방향을 정했지만 당장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시 KB금융은 올해 '균형성장을 통한 그룹가치 극대화'를 경영전략 방향으로 정하고 이를 위한 4대 핵심추진과제로 △원펌(One-Firm) 체제강화 △그룹 포트폴리오 최적화 △고객가치 창출을 통한 영업력 강화 △선제적 리스크 관리 및 대응능력 강화를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신한·하나금융 등 KB금융 사태 '불똥'
오는 3월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신한금융지주 역시 KB금융 사태로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가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은 만큼 라응찬 회장의 거취는 물론 차기 회장 선임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정통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견지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경우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신한금융은 일단 올해 연간 순이익 목표를 2조원 이상으로 잡고 보험 부분의 시장 점유율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해외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금융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그룹 투자금융(IB)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지주의 김승유 회장은 취임 5주년을 맞는다. 행장 시절부터 따지면 13년째다. 김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평가되고 있지만 하나금융 역시 정부의 금융권 손보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전망이다.
하나금융은 올해 확장에 초점을 맞춰 영업과 경영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주력 계열사인 하나은행은 경영 구호를 '2010 점프 투게더(Jump Together)'로 정했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올해 더욱 높이 도약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면서 "영업점을 중심으로 고객 관리에 나서 기존 고객에 대해서는 교차 판매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금융 역시 올해 금융권 지각변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외환은행 인수에서 하나금융이 돌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은 올해 임직원 개개인의 창의적 사고와 실천 능력을 키워 1등 금융지주사로 도약하는 것을 경영목표로 세우고 그룹사 차원의 혁신 브랜드로 '원두(OneDo)'를 선정했다.
원두란 '한 사람'과 '1등'을 상징하는 'One'과 '실천하다'라는 뜻의 '두(Do)'의 합성어다.
우리금융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한 사람의 작은 변화로부터 우리만의 DNA 창조'라는 혁신 목표로 정하고, '질문던지기' '관점 바꾸기' '생각 모으기' '낭비 버리기' 등 4대 행동 원칙을 설정했다.
또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제안제도인 '와이디어(WhyDea)'와 영업현장의 혁신리더인 '마에스트로(Maestro)', 부점 단위 혁신 소모임인 '와이팅(WhyTing)'을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연말 가진 '2010년 경영전략회의 및 혁신비전 선포식'에서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발상을 전환해 어떠한 금융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민첩하고 강인한 조직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금융회사가 이처럼 '창의 경영'을 그룹사의 경영 목표로 전면에 배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당국, 금융권 '군기잡기' 지속될 듯
KB금융 '손보기'에 성공한 금융당국의 금융권 '군기잡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강 행장의 사임 발표로 '신관치' 논란이 거세지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밝혔지만 당국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2010년 검사업무 운영방향'을 통해 국민은행과 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 매년 종합검사를 실시키로 하는 등 금융권 현장검사를 강화할 계획을 밝혔다.
또 김종창 금감원장은 새해 신년사를 통해 "시장 불안요인에 대해 신속히 기획·테마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불안심리 확산을 방지할 것"이라면서 "잘못된 부문은 확실히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해 은행권에 대해 강도높은 규제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임기와 겸직 등 은행권 사외이사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 방안을 담은 '은행권 모범규준'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CEO) 자리도 분리된다.
아주경제= 민태성, 김유경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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