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의 벽은 너무 높았다. 강정원 KB금융 회장 내정자가 끝내 사의를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인 KB금융의 경영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이번 사태로 금융당국은 최근 사전검사를 비롯해 KB금융에 대한 초강경 압박으로 강 회장의 사임을 이끌어내면서 '신관치'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강 회장은 이사회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의를 밝혔다.
강 회장의 사임은 이날 오전 국민은행 전체 임원회의를 소집하면서 예상됐었다. 강 회장은 임원들에게 신년인사 겸 내년 사업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할 것을 주문하고 종무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KB금융의 경영공백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KB금융은 지난 10월 황영기 전 회장이 우리은행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된 손실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3개월 가까이 회장 자리가 비어 있었다.
황 전 회장 또한 금융당국의 압박에 못이겨 사임하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문제는 내년 금융권 '빅뱅'을 앞두고 KB금융의 경영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외환은행 매각과 우리금융 민영화 등 내년 금융권은 지각변동을 겪을 전망이다. KB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고 수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된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과 함께 국내 금융시장 발전의 선두에 서야 할 KB금융이 흔들리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경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금융권에는 벌써부터 후임 인사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 회장의 사퇴 이후 관료 출신 인사가 차기 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다.
금융시장은 강 회장의 사임이 금융당국의 은행권 '손보기' 수준을 넘어 '신관치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한창인데다 관례적으로 금융당국이 연말과 연초에 은행 군기잡기에 나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신년 벽두부터 서슬 퍼런 관치 아래 눈치보기식 경영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국민은행과 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 매년 종합검사를 실시키로 하는 등 금융권 현장검사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2010년 검사업무 운영방향'을 발표했다.
또 김종창 금감원장은 새해 신년사를 통해 "시장 불안요인에 대해 신속히 기획·테마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불안심리 확산을 방지할 것"이라면서 "잘못된 부문은 확실히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해 은행권에 대해 강도높은 규제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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