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시발점인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1주년이 지났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침체를 몰고 온 전대미문의 폭풍우 속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전쟁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리먼 파산 1주년으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불렸던 월가 전직 최고경영자(CEO)들의 행보 역시 새삼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
풀드의 최근 발언은 다시 호사가들의 입을 바쁘게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난 억울하다. 금융위기의 책임을 묻고 손가락질할 대상이 내가 됐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 해도 듣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이중적이다. 올 초에 풀드는 사무실 밖에서 고객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가졌으며 위험관리는 다른 사람들이 할 것으로 알았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풀드에 대해 필요 이상의 비난이 일고 있다는 동정론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회사의 파산을 이끈 CEO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안의 심각성과 상황은 다르다. 또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풀드가 다시 화제에 오르는 것을 보며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사태가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미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권의 실력자에서, 비난과 동정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풀드는 1969년 리먼브라더스에 입사한 뒤 1993년 CEO의 자리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회사 파산의 책임을 지기 전까지는 15년 동안 CEO 자리를 유지하면서 월가 최장수 CEO라는 명예도 얻었다.
황 회장은 외국계은행에서 금융 생활을 시작한 뒤 삼성그룹과 삼성증권, 우리은행 등을 거치며 실패를 모르는 한국의 대표 금융맨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금융위기 폭풍 속에서 이들은 결국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 피해를 안겨줬다는 비난을 받은 가해자인동시에 시대의 피해자가 됐다.
감독당국이 관리 소홀에 따른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동정을 받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금융위기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금융위기에 앞서 파생상품의 남발과 과도한 레버리지, 모기지 대출 급증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은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다.
이는 모든 책임을 풀드를 비롯한 월가 경영진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는 공감대로 이어졌다.
황 회장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 금융권 역시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등 감독당국이 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채 뒷북치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CEO로서 회사와 주주들에게 피해를 줬다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최고 수장의 숙명이다.
그러나 모두가 혼란에 빠질 때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희생양을 찾기 위한 마녀사냥은 책략과 군중심리에 쌓여 아무도 모르게 사실처럼 진화한다.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한발 물러나, 냉정하고 현명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진실은 때로 역사라는 이불을 쓴 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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