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발언 계기로 사업 축소 본격 공론화
“정권따라 흔들린다” 주민들 정부 불신 팽배
“행복도시 주민들은 모두 말라 죽고 있다고. 4대강은 되면서 왜 행복도시는 안되는 거란 말이여~.”
행정복합도시(세종시) 공사가 진행 중인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용포리에서 만난 주민 강승의 씨(63)는 "이제 세종시에 대해 포기했다"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토해냈다. 강씨는 "그 동안 세종시에서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올라가는 것을 못 봤다"며 "주변 땅값도 너무 많이 떨어졌다"고 걱정했다.
주민 김 모씨(52)는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충청도 출신이면 이 쪽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고 나서야지,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은 민심을 무시하겠다는 얘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남면에서 만난 주민들은 현재 용포리 주변에 들어오기로 했던 아파트들도 건설계획을 1년 이상 연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행복도시 공사 현장은 기본적인 용지 작업만 이뤄졌을 뿐 토목공사가 시작된 곳은 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대는 산산이 사라졌다.
어쩌다 한번 지나가는 15톤 트럭은 오히려 잘 닦여진 도로를 무색케 했다. 포크레인과 불도저 같은 공사장비도 어쩌다 간혹 눈에 띌 뿐이었다.
세종시는 분노와 포기, 황량함이 뒤섞인 유령도시 그 자체였다.
거리 곳곳에 '행복도시 축소 건설 반대한다'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고 문을 닫은 공인중개사 사무실과 흉가처럼 변해버린 가게들은 이곳이 정말 세종시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였다.
주민들은 정치권의 당략에 따라 표류하고 있는 세종시 건설문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충남 공주시 장기면에서 30년째 이발업을 하고 있다는 김정수 씨(55)는 "이 곳 주변 상권 50%가 다 죽었다"며 "정부가 시간만 끄는 바람에 이곳 주민들은 다 말라죽게 생겼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우리 자식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줄 알고 기뻐했는데 이젠 포기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때 행복도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해 놓고선 왜 지금 와서 축소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현정부를 비판했다.
같은 곳에서 건설중기 임대업을 한다는 우희택 씨(43)도 "행복도시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땅 장사를 하는 것"이라며 "왜 정부 때문에 이곳 주민들이 고통 받고 힘들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행복도시가 난항을 겪는 이유로 정권이 바뀐 점을 들었다.
세종시가 출발부터 충청지역 민심을 겨냥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지적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 정권이 바뀌면서 세종시의 성격과 범위를 규정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당이 조합을 달리해 가며 엎치락뒤치락 처리를 미루고 있다.
용포리에 거주하는 한윤식 씨(64)는 "정권이 바뀌고 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겠냐"며 "4대강을 추진하는 것처럼 행복도시를 추진했으면 이런 고생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목축업을 하고 있다는 윤찬중 씨(61)도 "행복도시 관련 문제가 또 다시 언급되는 것 자체가 언짢은 일"이라며 "이번 정권이 끝나봐야 일이 다시 진행되지 않겠느냐"고 속내를 털어 놨다.
용포리에서 전원주택 개발업을 한다는 전진규(48·남)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권 민심을 달래려 충청 출신을 총리로 기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충청인을 분노케 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며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충청인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남 연기군 용포리=팽재용·이정화기자 paeng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