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사관(史官)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했다. 심지어 태종시대의 한 사관은 사냥터에서 낙마했던 태종이 이를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신하에게 귀뜸한 것까지도 태종실록에 남겼다.
왕이 잘했건 못했건 간에 사관이 모든 기록을 남겼던 것은 후세대가 단순히 과거를 이해하라는 차원은 아니다. 과거의 성공 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배우라는 의미다.
기업 경영에도 전반적 기업활동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불황일수록 기업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경영 기법을 만들어 낸다. 위기에 빛나는 경영 노하우는 이러한 기법의 성패와 무관하게 기업의 모든 활동을 기록할 때 쌓이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똑똑한 기업일수록 기업의 활동을 세밀하게 기록한다"며 "성공 뿐 아니라 실패한 프로젝트도 기록에 남겨야 전략 수립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코카콜라의 경우 1985년 새로운 제조법으로 개발한 '뉴코크'를 시장에 선보였지만 크게 실패한 적이 있다. 당시 코카콜라는 창립 99년만에 최악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신문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고 이러한 실수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러한 기업활동에 대한 세밀한 기록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현재 코카콜라는 과거 기록을 토대로 당시의 실패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영자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도 정부 차원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해 기업내부에 기록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 기록관리부 설치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마른 수건 조차 한번 더 짜내야 하는 기업으로서 비용만 드는 기록부를 운영하기는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 기록컨설팅회사인 윈스롭그룹의 린다 에드걸리 이사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기록관리부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은 HSBC은행, 코카콜라, 프록터앤드갬블(P&G) 등 글로벌 기업들은 오히려 기록관리부를 강화해 과거의 기업활동 기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HSBC은행의 경우 몇년 전 아시아-태평양 지사에 기록관리부를 설치한 데 이어 최근 북미 지역에도 기록관리부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헬렌 스윈널톤 HSBC 아태지역 기록관은 "HSBC은행 내의 기록관리부는 세계1·2차대전과 같은 전쟁 상황에도 HSBC가 살아 남는 데 주효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기록관리부의 역할이 대두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다. 과거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기록관리부를 지켰던 것과는 달리 90년대 이후 기록관리부에 IT(정보기술)로 무장한 고급인력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순하게 정보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 이상을 수행했다.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와 연관된 과거 기록을 제공함으로써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다국적 미용 및 제약업체인 부츠의 소피 클래프 기록관은 "기록관리부에는 과거 유행했던 미용제품의 제조법에 대한 수 많은 기록물이 있다"며 "하지만 이중에서도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제품들과 관련된 기록들을 중심으로 재구축된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거 뿐 아니라 현재의 기업 정보뱅크 역시 관리한다. 즉 현재의 기업 전략이나 실행 과정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까지도 세밀하게 파악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독일 광학 업체인 칼 자이스의 울프강 위머 기록관은 "과거 기록관리부가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에 중점을 뒀다면 현재는 기업의 모든 부서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인다"며 "심지어 각 부서별로 펜을 구입하는 방법과 경로까지 기록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 경기 침체기 동안의 기업활동 기록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 코카콜라의 경우 과거 대공황 시기에 마케팅 비용을 늘려 오히려 수익을 본 사례를 근거로 최근 마케팅 비용을 늘리기도 했다.
필 무니 코카콜라 기록관은 "이러한 과거 사례는 기업의 임원들이 타부서의 예산을 삭감하면서까지 광고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했다"며 "마케팅부는 과거 코카콜라가 불황에도 마케팅 비용을 늘렸다는 기록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고 설명했다.
에드 라이더 P&G 기록관도 "기록관리부는 기업이 이미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실제 P&G 마케팅부는 최근 액체형 세제의 조밀도를 설명하기 위해 1990년대 개발했던 그래픽 프로그램을 재활용하기도 했다.
메모
FT가 전하는 기업활동 기록법
1. 성공한 전략과 프로젝트 기법을 자세하게 기록해 문서화할 것
2. 실패한 활동도 기록할 것
3. 중요한 기업활동에 대한 스케줄을 짤 것
4. 기록프로젝트를 기업 전체에 공시할 것
5. 누락된 과거의 활동을 파악하기 위해 퇴직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할 것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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