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연중 최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시 섬머랠리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다 글로벌 경제의 회복이 가시화하고 있어 환율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율 하락은 금융위기 여파가 진정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하락 속도가 가파를 경우 수출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져 환율이 하반기 경기회복의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환율 5개월만에 25% 급락...연내 1100원대 진입 확실시=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4.4원 하락한 1218.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3월초 1600원 선을 위협한 이후 5개월만에 25% 가까이 급락한 셈이다.
최근 1년간 달러·원 환율 추이 (출처: 야후파이낸스) |
외환 전문가들은 연내 환율의 1100원대 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외 금융시장이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지난해 9월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투자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약화되면서 환율은 추가 하락할 것"이라면서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내 1100원대 진입은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유로와 엔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수치화한 달러인덱스는 77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9월29일 이후 최저치다.
달러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최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제지표가 잇따라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7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예비치인 46에서 46.3으로 상향되면서 11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유럽과 중국 역시 제조업지표가 개선됐다.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 또한 7월 48.9를 기록하면서 올들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위험자산으로 투자자금 이동...증시가 관건=해외 주요 투자기관들은 달러의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푸트남인베스트먼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달러 매도 모멘텀이 본격 시작됐다"면서 "경기회복 기대감이 퍼지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이 올들어 처음으로 각각 1000선과 2000선을 돌파했다는 사실도 달러 약세 배경이다.
위험도가 높은 투자수단으로 분류되는 주식에 글로벌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안전자산인 달러로부터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증시에서도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들은 지난달에만 월 최대 규모인 5조8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전일 사들인 물량만 3900억원에 달한다.
이같은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수 행진에는 최근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을 노린 세력이 대거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증시 강세가 환율을 끌어 내리고 이는 다시 증시 상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박용일 DBS 이사는 "외환시장은 증시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면서 "증시가 조정을 받을 경우 환율 반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환율 하향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유현정 씨티은행 팀장 역시 환율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유 팀장은 "전반적으로 원화강세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하반기 주요 변수는 증시에서의 외국인 매매 동향과 경상수지, 수출 회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국, 내수 vs. 수출 딜레마...시장 개입 불가피=환율 하락이 가속화하면서 당국의 시장개입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아직 당국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외환시장에서는 개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의 이 팀장은 "오늘 아침에도 역외선물환 시장에서 3억달러 정도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수천억원씩 사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 선임연구원은 "한은의 통화스와프 회수 등은 결과적으로 지나친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한 통화 당국의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된다면 회수하는 것이 맞고, 실제로 환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수출경쟁력 하락 및 가격변동성이 커져 기업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 입장에서는 내수와 수출을 모두 감안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1250원대가 적정 환율로 여겨지는 수출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은 이미 상당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 수출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개입을 확대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경기회복을 위한 내수 부양 비중을 높일 경우 어느 정도의 환율 하락은 용인할 수 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안 박사는 "출구전략 논란 속에 내수까지 생각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환율 하락을 감안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여전히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생각하면 환율 하락을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주경제= 민태성, 김유경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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