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동 법안 제46조는 “정부는 ........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을 설정하고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 등을 실시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배출허용기준 설정과 같은 기존의 명령-통제방식의 규제에 비해 보다 비용-효과적으로 오염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로서 그 자체로는 다른 제도보다 우월한 제도다.
실제로 미국에서 도입된 각종 배출권거래제도는 다른 규제방식보다 사회적 비용을 훨씬 감소시킨 것으로 평가가 되고 있다.
교토의정서에서 배출권거래제도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제시된 것도 각국이 이 제도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감축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이 왜 이렇게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도가 도입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로는 배출권거래제도가 이론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임에 분명하지만 성공적 도입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배출권거래 시장에 배출권을 파는 기업과 사는 기업 수가 충분히 많아 필요할 때 배출권을 쉽게 사고 팔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시장이 기능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기업들은 배출권거래제도가 실시될 경우 국내에서는 배출권을 팔려고 할 기업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배출권거래제도는 국내 기업에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동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배출권거래제라는 표현 앞에 붙어 있는 총량제한이라는 용어 때문일 것이다.
총량제는 국가 또는 제조업 전체의 배출총량을 일정 한도로 묶어 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감축량을 기업별로 할당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선진국과 달리 에너지다소비 제조업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감축 여력이 적어 총량제한은 곧바로 국제경쟁력 약화와 산업의 해외이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기업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에너지 효율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어 성장을 줄이지 않으면 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운 데다, 선진국 중에서도 현 단계에서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실질적으로 EU 밖에 없고, 미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과 중국 등 우리의 경쟁국들은 우리보다 탄소배출량이 월등히 많으면서도 총량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반대의 논리다.
더욱이 이 제도가 실제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우선 각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저감 잠재력과 저감비용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기준으로 배출권이 할당되어야 하는데, 정책당국이 이러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즉 각 산업의 저감 잠재량은 기업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뿐 정책당국은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가 대단히 힘들 뿐 아니라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저감 기술에 의한 저감 잠재량 예측은 지극히 불확실하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조지 애컬로프 교수에 따르면 정보가 비대칭적인 시장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좋은 물건을 가져가게 되어 일부 거래자들만 이익을 취하게 되고, 중장기적으로는 사회적인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이는 정확한 정보를 기초로 하지 않는 정책은 커다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자동차, 전자, 철강, 석유화학 등 최근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력 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중국의 공업생산 능력 확대로 세계 시장에서 크게 위협받고 있어 약간의 생산비 상승도 국내 경제에 커다란 주름살을 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국내 산업의 경쟁력은 기업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보다 강해서 온실가스 배출규제에 따른 다소의 생산비 상승 요인을 충분히 감당할 여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국내에서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성급한 정책 결정은 결코 바람직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