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수록 고객만족도는 높아진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적어도 이번 불황에는 그렇다. 과거 불황기에는 기업들이 씀씀이를 줄이는 데 급급해 고객들을 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찬밥 신세가 된 고객들의 만족도는 소비심리지표와 함께 추락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 불황은 다르다. 미국의 소비심리지표는 최근 두달 연속 뒷걸음치고 있지만 고객만족도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분기 미국 고객만족지수(ACSI)는 76.0으로 통계가 처음 나온 1994년(74.8) 이후 가장 높았다.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지난해 3분기 이후 연속 오름세다.
반면 미국 콘퍼런스보드가 28일(현지시간) 발표한 7월 소비자신뢰지수는 46.6으로 전달(49.3)보다 위축되며 2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ACSI 추이(출처:theacsi.org)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고객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기업들이 서비스 부문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루스 템킨 포레스터리서치 부사장은 "불황기에는 기업들이 비용절감에 나서기 때문에 고객만족도가 낮아지게 마련이지만 새로운 경기침체에 직면한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면서도 고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문에 대한 투자는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넥스텔(Sprint Nextel)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줄곧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말 서비스 개선 프로그램을 시행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신문은 스프린트넥스텔이 고객 콜센터의 서비스를 강화하고 최고서비스책임자(CSO)를 영입한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이 회사는 고객의 첫번째 전화 문의 때 문제를 해결하는 직원에 대한 보상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고객당 평균 문의 전화 건수가 2007년 8건에서 지난해 4건으로 줄었다. 2007년 영입된 봅 존슨 CSO가 이런 변화를 주도한 이로 꼽힌다.
포레스터리서치는 최근 북미 기업들 사이에서 스프린트넥스텔처럼 CSO를 영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 대기업 가운데 57%가 지난해 CSO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에 비해 3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경기침체기의 기업 실적은 소비자들의 만족도보다는 충성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지적한다. 고객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떨어진 결과로도 볼 수 있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레스토랑 체인 치즈케이크팩토리(Cheesecake Factory)는 고객만족도와 충성도를 동시에 높이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이 회사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신규 매장 개설을 제한하고 있지만 고객 서비스는 한층 강화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부터 시행한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프로그램이다.
치즈케이크팩토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접수하고 서비스 개선에 나섰다. 특히 고객들이 가장 큰 불편으로 꼽은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음식 주문과 상차림 등의 과정을 단순화했다. 그 결과 ACSI가 오른 것은 물론 실적 역시 크게 개선됐다.
이 회사의 데이비드 오버튼 최고경영자(CEO)는 "비용은 절감하되 매장을 찾은 고객들의 만족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 서비스 부문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미국 최대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Comcast)는 지난해 네트워크 장애를 사전에 감지하고 콜센터 직원이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신속하게 접수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선보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지만 수확은 그 이상이었다. 지난해 콜센터 문의 건수는 30% 줄었고 지난 1분기 비디오 서비스 부문의 ACSI는 9.3%나 올랐다.
US에어웨이스(US Airways)도 유가 급등과 승객수 감소로 고전해온 항공사로서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해 효율적인 고객 수화물 관리를 위해 휴대용 스캐너를 도입한 것.
그 결과 지난해 수화물 관련 사고가 한 해 전보다 43% 급감했다. 지난 1분기 미국 교통부가 접수한 고객 불만 사례는 일 년 전보다 35% 줄었고 ACSI는 같은 기간 9.3% 올랐다.
케리 해스터 US에어웨이스 고객서비스 부문 수석 부사장은 "스캐너 도입 비용을 메우는 데 1년 남짓 걸리겠지만 문제 있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만 못하다"고 말했다.
경쟁사인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스(Southwest Airlines)도 최근 콜센터의 서비스를 개선했다.
콜센터 직원과 통화하려면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점을 감안, 고객이 전화를 걸었다가 끊으면 콜센터 직원이 전화를 되걸어주는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이 서비스는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교통부 불만 접수 건수는 56% 줄고 고객만족지수는 2% 상승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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