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장 희
(이화여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선진경제로 도약하자라는 거창한 구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선진화의 핵심요소인 기술선진화의 가능성은 우리나라의 경우 요원한 것 같다. IT 강국, 가전제품의 왕국 소리를 들으면서도 핵심 부품은 일본에서 사다 쓴다. 우리나라의 이름 난 반도체 생산 공장을 가보면 핵심장비가 대부분 미국-일본-독일에서 사온 것들이다.
기술수준에서 이들 국가를 못 따라 잡는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젊은 엘리트들이 이공계(理工系)를 오랫동안 기피하여 왔기 때문에 기술계통에 새 인력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그동안 다양한 정책적 대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효과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즉 원인진단이 잘못되었고 또 정책적 대응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원인진단부터 보자. 교육과학기술부의 발간물들을 보면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이 이공계통과목이 어렵다는 점, 청소년들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기준이 취미-흥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 이공계 교육내용이 구태의연하여 실용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 이공계 졸업생들은 취업 후 줄곧 실험실에만 박혀있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우려 등이다.
그러나 몇몇 경제학자들의 원인진단을 보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결국 '시장적 요인'때문이라고 나와 있다. 즉 이공계 졸업생들은 타 전공 졸업생들에게 비해 월급수준도 낮고 기타 대우도 떨어지며 더욱 중요하게는 승진의 기회도 제한되어 최고 경영자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시장에서의 보상체계가 타전공자에 비해 크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후자의 해석이 맞다고 본다. 이공계 과목이 어렵고 내용이 삭막해서 젊은이들이 기피한다면 왜 그들은 의과-치의과-법과 등과 같이 어렵고 재미없는 전공으로 몰리고 있는가? 결국 노동시장에서 이공계 출신에 대한 대우(경제적, 비경제적)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의 '가격'이 왜 그리 낮은가?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통계에 의하면 2001년에서 2005년 사이에 이공계 박사인력의 공급은 1만6200명이었는데 박사급 인력의 수요는 1만1700에 그쳤다는 것이다. 박사급 인력을 쏟아냈는데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필자는 그동안 정부 각 부처에서 과학기술인력양성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검토해보았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과학기술인력 공급확대에 맞춰져 있음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환경부의 환경기술전문 인력양성 지원프로그램이나 산학연연계 인턴십 프로그램 등은 모두 과학기술인력 공급확대 전략이다.
이에 비해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느 자리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형편이다. 여기서 얻어진 결론은 우리나라가 기술선진국이 되기 위하여 앞으로는 과학기술인력의 양성계획 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많이 만들고 크게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수요곡선이 우(右)측으로 크게 이행하도록 각종 정책을 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수요 진작의 정책으로서 필자는 다음 열 가지 정책을 제안한다. 첫째, 이공계졸업생을 채용하는 기업에게 세제 및 금융혜택을 제공할 것, 둘째, 이공계 석박사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할 것, 셋째, 대덕에 몰려있는 연구 단지를 서울 및 기타 지방에도 확대 설립할 것, 넷째, 기술계 직장인에게 격조 높은 재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 다섯째, 이공계출신 공무원의 채용확대를 위해 공무원 임용 제도를 대폭 개선할 것, 여섯째, 정당-사회단체-각종 협회 등 등록시에 과학기술인력 채용을 의무화할 것, 일곱째, 정부의 미래발전전략에서 과학기술인력의 역할이 어느 분야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 여덟째, 국방 분야에도 기술인력수요를 확대할 것, 아홉째, 일반국민의 평생 교육 안에 과학기술내용을 대폭 포함시킬 것, 열 번째, 전국적으로 과학의 ‘새마을운동’을 전개할 것 등이다. 이러한 특단의 대책 없이 기술한국을 건설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