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하나 짓는 비용은 500만원인데 인.허가를 받는데 4천만원이 들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8일 내놓은 활동 저해 규제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규제 왕국'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전경련이 꼽은 대표적인 규제 사례.
◇ '건축비 500만원' 창고 인허가 받는데 4천만원 필요 = 천안에 있는 L사는 지구단위계획에 있는 15만1천800㎡의 공장부지에 90㎡ 크기의 창고를 지으려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창고를 신축하면 이미 허가받은 지구단위계획에 변동이 생기므로 지구단위계획 변경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거치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L사는 19개의 첨부서류와 도면을 준비해야 했고, 창고 건축비인 500만원의 8배나 되는 4천만원을 인.허가 비용으로 쓰고서야 창고를 지을 수 있었다.
보고서는 "지구단위계획구역에 건축된 공장부지에서 기업활동에 필요한 소규모 창고와 사무실 등의 신·증축은 건축허가나 건축신고로 갈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 좋아도 대출 '퇴짜' = 대기업인 B사는 작년 신사업에 진출하려고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면서 은행에 500억원의 대출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기 위해 만든 중소기업 대출의무비율(시중은행 45%)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더는 대출해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수한 신용을 보유하고도 대출받지 못한 B사는 결국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융통했다.
은행들이 기업의 신용도와 사업성을 평가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인위적인 대출 비율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남는 에너지를 버린다 = 지방 도시의 산업단지에서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는 A사는 작년 156억원을 투자, B지구 신축아파트에 열을 공급하는 지역난방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열병합발전소의 가동률이 산업단지 내의 집단에너지 사용량이 감소하면서 58%밖에 되지 않자 유연탄이나 벙커-C유로 생산하는 잉여열을 주변 택지지구의 난방용으로 공급하는 묘안을 짜냈던 것.
이는 생산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주민도 저렴하게 난방열을 공급받을 수 있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난방은 청정 연료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환경 규제 때문에 남는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계획은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정부가 산업단지 집단에너지의 유휴설비를 활용해 지역 냉.난방 사업을 주요 정책으로 장려하고 있는 것과도 배치된다.
전경련은 기존 설비를 활용하는 범위에서 환경 기준을 준수한다면 잉여열을 인근 지역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고쳐야 = 연평균 3천개 이상의 승강기를 판매하는 R사는 제품 특성상 반제조 부품을 건설현장으로 가져가 마무리하는 작업을 거친다.
승강기 설치는 일회성 작업인데다, 작업장이 전국에 산재해 직접 시공보다는 협력업체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R사는 전문 설치 업체를 협력업체로 등록하고 해당 제품의 조립.설치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 사항을 지속적으로 교육한다.
수주에서 설치 후 인증까지 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그러나 승강기 설치업도 해당되는 건설업에선 재하도급이 금지돼 있다.
전경련은 업종의 특성을 감안해 재하도급이 불가피한 업종에 승강기 설치업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잉 서류 요구도 = T사는 북미지역에 있는 해외 광구 경매(1억달러 규모)에 입찰하는 과정에서 입찰액의 10%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반출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응찰 단계에서는 별다른 계약서가 없는데도 해외 송금을 위해서는 계약서나 이에 준하는 서류를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결국 외화 송금을 위해 관련 공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이 공기업을 앞세워 입찰 보증금을 납부하는 편법을 써야 했다.
증빙서류를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간단한 사실 관계 확인 절차를 거쳐 송금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