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조직원들과 거리두기다. 조직원들과 허물 없이 지내고 싶지만 정도를 넘으면 조직의 체계가 흔들린다. 그렇다고 집무실에 들어 앉아 인상만 쓰고 있자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연공서열과 상명하복이 지배하던 기업문화는 '한물갔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성들이 기업 요직을 두루 차지하게 되면서 '상냥한 보스'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4년 갤럽 조사만봐도 보스에게 친근함을 느끼는 직장인들의 업무 만족도는 그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 2.5배나 높게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직장인들 가운데 60~75%가 상사와의 불화를 직장 내 최악의 스트레스로 꼽았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보스와 부하 직원 사이의 지나친 친분관계는 기업 경영과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연공서열과 상명하복만큼이나 비판 받아온 과거 기업문화 가운데 하나가 갖가지 인연에 이끌린 온정주의였다.
그렇다면 상냥함의 끝은 어딜까. 미국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는 최근 기업 보스가 부하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해졌지만 '만인의 연인'이 될 필요는 없다며 보스가 조직원들과 '공적인 정(情)'을 쌓을 때 지켜야 할 몇 가지를 지적했다.
◇못하는 직원 감싸지 마라
공사 구분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부하 직원이 개인적인 문제나 업무와 관련해 상사를 찾아 온다면 가능한 한 도움을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힘들 때 도움을 주고 받게 되면 친분관계는 두터워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쌓인 관계가 인사평가의 공정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조직원 개인과 형성된 공감대는 조직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수행 능력이 뒤쳐지는 직원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특혜논란에 휘말리기 쉽다. 인사 평가자인 보스와 해당 직원과의 사적 친분관계가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리더십 전문 심리학자인 수잔 배틀리는 "수행능력이 뛰어난 직원이라 할 지라도 상사가 그 직원을 감싸고 돌면 조직 구성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뒷담화, 주인공으로 만족하라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 수다만한 것이 없다. 이런 수다의 공통분모는 주로 직장동료나 고객에 대한 가십이 주를 이룬다. 어떤 경우에는 얼마나 자주 함께 뒷담화를 나누느냐에 따라 친밀도가 정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보스도 직원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벼운 수다로 인해 전체 조직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뒷담화에 포함되느냐 배제되느냐에 따라 편가르기가 시작되고 기업 내부의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연 중에 보스의 편애나 편증이 드러날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친구보다는 멘토가 되라
지위를 막론하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직장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 보스가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겠다며 그 무리의 일원이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부하 직원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이른바 '보스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보스를 마치 자신의 동료로 인식하게 되면 보스는 업무를 지시하고 직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상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진정한 보스는 자아실현을 위한 목표를 제시하거나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부하 직원의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가 돼야 한다.
◇업무는 부탁하지 말고 지시하라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친절한 보스들은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기보다는 '부탁'하는 경향이 있다. 부탁이 먹히지 않으면 보스는 과중한 업무를 떠안게 된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보스의 업무 '독식'을 반기는 것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에게 어느 정도 도전적인 업무가 주어지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다 결국 이직을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보스는 직원들에게 적절한 도전 과제를 부여해 사기를 높이고 일을 배울 수 있는 동등한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