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에 이어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미국 자동차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비 온뒤 땅이 더 굳어지듯 기업들이 파산보호 과정에서 수익성 있는 부문을 잘 건져 내면 미국 경제회복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8일자 최신호에서 미국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시장의 강자로 거듭나면 미국의 경기회복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업 파산 전문 조사업체인 AACER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은 모두 2만251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2% 급증했다. AACER은 올해 개인 및 기업의 파산보호 신청 건수가 지난 2007년의 두 배가 넘는 150만건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잇딴 파산으로 신이난 건 '벌처(vulture)펀드'들이다. 벌처펀드는 파산하거나 부실화된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상황이 호전된 후 고가로 되팔아 차익을 내는 사모펀드를 일컫는다. 이들은 파산 기업의 고수익 부문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인수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고 벌처펀드를 약탈자로만 볼 수는 없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오히려 벌처펀드의 왕성한 식욕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잡지는 설명한다. 벌처펀드가 부실기업을 사들여 기업에 딸린 금융권의 부채를 빨리 상환하면 은행 역시 개인 및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려 수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파산시스템 역시 재원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재배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호평했다. 파산보호 절차를 규정한 '챕터11'은 해당 기업을 법원 보호 아래 두고 채무 상환을 연기,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회생을 유도한다. 청산 직전의 기업에겐 탈출구가 되는 셈이다.
또 개인파산 절차를 담은 '챕터13'은 개인이 다시 경제생활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셸 화이트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파산 전문 연구원은 "미국의 파산법은 영국처럼 너무 엄격하지도 않고 프랑스처럼 너무 너그럽지도 않다"며 "미국의 파산제도는 파산한 개인이나 기업이 경제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기업의 파산으로 실업률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실업사태를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고와 고용이 용이한 미국 노동시장의 특성과 부실한 복지정책 탓에 미국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평균 실업기간은 4개월로 유럽의 15개월보다 상당히 짧은 편이다.
취업이 여의치 않다면 퇴직금을 자본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지난해 불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에서 새로 등록된 사업장은 월 평균 53만곳에 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크리스피크림과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출범한 기업들이 호황기에 등장한 기업보다 시장 영향력이 더 큰 경향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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