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링컨' 꿈꾸던 노 전 대통령…미완의 개혁 숙제 남기고 오늘 영결식
‘아시아의 링컨’을 꿈꿔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9일 눈물과 비통의 한(恨)을 밟고 영원히 국민 곁을 떠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미국 링컨 대통령을 꿈꿨다. 그는 ‘노무현이 만난 링컨 대통령’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남과 북, 동서로 분열돼 쟁투가 끊이지 않는 우리 시대와 링컨 대통령이 직면했던 그 시대가 너무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링컨이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고 말한 구절을 인용, 우리가 처한 동서 간의 지역 통합 없이는 개혁도, 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통합의 문을 통과해야만 개혁도, 발전도 가능하다”고 말하며 남과 북, 동-서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죽음의 방법은 달랐지만 피살(링컨), 정신적 압박(노무현) 등 ‘강제적인 외생변수’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것까지 비슷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일부에선 검찰이 표적수사, 과잉수사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샅샅이 이를 잡듯, 연못의 물을 바닥까지 퍼내 바늘 찾아내듯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한 것 자체가 정치적 의도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가 뇌물로 받았다고 하는 600만달러의 액수는 천문학적 규모였던 이전 대통령들의 불법 자금에 비하면 극히 작은 액수였다. 물론 전직 대통령도 비리를 저질렀다면 면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뇌물의 규모는 물론 수수 대상이 오랫동안 정치적 후원자 역할을 해 온 기업인들이었다는 점, 뇌물의 성격 등은 충분히 정상을 참작할만한 것이었다.
수개월 간 언론을 도배할 만큼 수사 내용이 보도됐음에도 불구하고 서거 후 전국 각지에 차려진 분향소에 수백만명이 추모의 물결에 동참한 것은 국민들이 어떻게 검찰의 수사 내용을 평가하고 있는지 반증해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수많은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반대에 봉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렸고,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인권 변호사 시절 노동자의 편에서 권력에 항거했던 모습, 5공 청문회 모습, 3당 합당에 당당히 반대하며 거수했던 모습, 퇴임 후 마치 시골 촌부와도 같은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반면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던 참여 정부가 결국 지난 수십 년 간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중산층을 흔들었고 전형적인 양극화 현상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적인 경제 호황 속에 달러의 하락, 저금리 기조 덕분에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청년고용 악화, 자영업자 붕괴로 민생은 파탄에 이르게 됐다.
이제 그는 모든 정치적 공과를 뒤로 하고 우리와 이별하려 하고 있다.
그는 ‘죽은 권력’을 향했던 공권력의 예리한 칼 끝이 ‘산 권력’을 향한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국화꽃 한 송이를 봉헌하기 위해 몇 시간씩 고속버스 타고 와 도보로 수km씩 걸어 밤을 지새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수백만명의 국민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이처럼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길 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 정부는 가슴 치며 애통해 하는 국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아울러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잃고 커다란 슬픔에 젖은 국민들. 정작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치의식을 발휘하여 슬픔을 승화시키는 일이다.
국민들에게 남은 몫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의미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영정 앞에서 흘리던 눈물들이 분노의 함성이 되어 빈들에 불이 번지듯, 쓰나미가 몰아치듯 전국을 휘감는다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정치권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보다 무겁기만 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정치개혁 등 민주주의 체제를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 지역적, 이념적, 세대간 갈등을 해소할 효율적인 정책들도 시급하다.
이런 과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때 노 전 대통령을 잃은 슬픔도, 분노도 새로운 민족적 영성과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분이시여, 편안히 영면하소서.
양규현 부국장 겸 정경부장 to61@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