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원 (엑스포디자인브랜딩 대표)
디자인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 지난 25년간 디자인 작업에만 매달려온 필자는 어느 때 부턴가 이런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생산과 소비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디자이너는 생산자이고 일반 대중은 소비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디자인 생산의 주체는 기업이나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고 디자이너는 단지 의뢰를 받아 그 일을 대신해 주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러면 디자인 결과물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필자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디자인을 보면서 과연 저 디자인은 누가 의사결정을 하였으며,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하는 배경에 궁금증을 가지는 버릇이 생겼다.
우선 간단한 심벌마크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소비자의 눈으로만 보면 당연히 한가지의 디자인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는 수많은 디자인 안과 여러 의사 결정 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한가지의 디자인만 탄생된다는 사실을 일반 소비자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의 품질이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자인 CEO이다. 말하자면 CEO의 안목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디자인 품질의 수준도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CEO의 의사결정 스타일에 따라서도 디자인 결과물의 품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CEO 중에는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들은 다음 자신이 최종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안목만 믿고 혼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독단적인 스타일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 중 가장 최악의 경우는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는 CEO가 여러사람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디자인 의뢰를 받으면 수십개, 또는 수백개의 아이디어를 내고 그 중 몇 개를 추려서 디자인 의뢰자에게 제시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가장 강력한 한가지 후보안만 추천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 다양한 접근 방법의 후보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후보안이 제시되면 조직 규모에 따라 복잡한 의사 결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는 디자인 업무를 맡은 담당자를 포함하여 그 조직에 있는 관리자 또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온갖 의견대립이 일어나고 난상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디자인 후보안을 놓고 100사람에게 의견을 물으면 100개의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게 디자인의 속성이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만약 의견대립과 난상토론을 조정하고 중재해 줄 의사결정자가 조직 내에 없다면 디자인 결정은 그 종착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표류하게 된다.
그래서 쉽게 택하는 방법이 대중의 의견을 묻는 다수결의 원칙이다. 대중에게 물어보면 그중 다수가 선호하는 안이 분명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그 안이 최고의 디자인, 즉 ‘정답’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고 보면 디자인 안에 대한 의사결정 방법은 다음의 3가지로 압축이 된다. 다수의 의견을 따를 것이냐, 디자인 전문가의 의견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CEO의 결정을 따를 것이냐 인데 이 중 어느 방법으로 디자인을 결정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3가지 중 한 가지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3가지 방법을 혼합해서 사용하면 된다. 선호도 조사를 통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디자인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면서, 최종적으로는 CEO가 자신의 안목을 배경으로 용단만 내리면 된다.
그래서 필자는 디자인에도 분명 ‘정답’은 있다고 믿는다. 의사결정의 방법만 개선하면 얼마든지 정답에 가까운 최고의 디자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그 방법은 멀리서 찾는 게 아니고 가까이에서 찾아야 한다. 그 ‘정답’은 바로 디자인 의사결정 방법의 프로세스를 개선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 내려는 디자인 생산 주체의 ‘의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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