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전업계의 마케팅 키워드가 '그린'에서 '절약'으로 바뀌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강조하는 것은 같지만 '친환경 제품'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얼마를 절약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불황 탓에 지갑을 닫아버린 소비자들의 관심이 구체적인 비용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가전업계가 제품의 잠재적인 비용절감 효과를 강조하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새로 나온 에너지 절약형 세탁기를 사면 연간 100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식이다.
이같은 경향은 지난달 열린 세계적인 가전박람회 국제 홈빌더쇼(The International Builders Show)에서도 두드러졌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올해 선보일 하이브리드 전기 온수기를 소개하면서 연간 25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콜러(Kohler) 역시 물 절약형 샤워기와 변기, 수도꼭지를 신제품으로 교환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일년에 90~200달러의 물값을 아낄 수 있다고 홍보했다. 월풀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900달러어치의 물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신형 세탁기를 들고 나왔다.
생활가전 업체들이 이처럼 '절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린'으로 대표되는 친환경 제품 이미지만으로는 불황기에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친환경 제품과 일반 제품의 가격차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점도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이끌어 냈다.
미국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가 친환경 제품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제공하고 있는 금전적 혜택도 '절약형' 제품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미국의 15개 주에서는 미 에너지부와 환경보전국이 에너지 절약형 제품이라고 인정한 '에너지스타'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 가격의 일부를 환불해 주는 리베이트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또 미 하원을 통과한 경기부양법안에도 3억달러를 이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그러나 신문은 가전업체들이 내세우는 절약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업체들이 에너지 및 비용 절감액을 산출할 때 기준으로 삼은 환경이 실제 사용 환경과는 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콜러는 샤워기와 변기, 수도꼭지 등 욕실 설비를 교체하면 연간 90~20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욕실 설비 전체를 콜러의 신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 회사 측도 개별 제품만으로는 비용절감 효과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월풀의 세탁기 역시 10년의 사용기간 동안 900달러를 아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소개됐지만 제품 수명은 사용환경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비용절감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신문은 가전업계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내놓긴 했지만 침체된 주택경기 탓에 시장 전망 역시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민텔인터내셔널의 데이비드 록우드 연구원은 "에너지 절약형 제품이 보장하는 장기적인 이익은 최근과 같은 주택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열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아무도 집을 짓거나 사지 않고 있는데 누가 집 안에 들일 가전제품을 사겠느냐"고 말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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