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조치로 사상최저 수준인 2.0%로 낮아지면서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동성함정이란 금리를 낮추고 자금을 공급해도 시중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가계나 기업의 소비.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금리가 더 이상 낮아지기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지면 금리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늘면서 통화정책의 `약효'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유동성 함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금리가 사실상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경계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시중에 공급한 자금이 단기 금융상품에 몰리고 장기 실물부문으로 공급되지 않는 단기부동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미 유동성 함정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유동성 함정 단계 아니다"
작년 9월 리만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난달까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5.25%에서 2.50%로 2.75%포인트나 낮아졌다.
91일 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9월 말 5.83%에서 11일 2.92%로 2.91%포인트 하락했다. 91일 물 기업어음(CP) 금리도 같은 기간 6.67%에서 3.78%로 2.89%포인트 내렸다. 단기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하분 이상으로 하락한 것이다.
회사채 금리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있고 소비나 투자도 전혀 살아날 기미가 없지만, 시중금리가 전반적으로는 내리고 있기 때문에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중금리가 전혀 반응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단기금리를 중심으로 시장금리가 크게 떨어진 만큼 유동성 함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동성 함정에 해당하는 기준금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해진 것이 없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1.5%까지 내려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돈이 안돈다"..단기부동화 가속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금융중개기능, 주로 은행의 대출을 통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다 보니 자금이 은행권에 맴돌면서 단기상품에만 몰리고 있다.
작년 12월 광의통화(M2) 증가율은 13.1%로 전월의 14.0%에서 0.9%포인트 급락했고 올해 1월에는 12% 내외로 더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만기 2년 이상 예.적금 등을 포함한 금융기관유동성(Lf) 증가율도 12월 10.4%로 전월보다 1%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현금과 초단기 금융상품으로 구성된 협의통화(M1) 증가율은 작년 5-6월 1.0%에서 12월 5.2%로 크게 높아졌다.
시중유동성이 중장기 금융상품으로 유입되지 못하면서 협의통화만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에 떠도는 단기 부동자금도 약 5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 통화정책 무력화 우려
단기부동화 현상이 심화되면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 금융기관의 대출기피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SC제일은행 전종우 이코노미스트는 "자금의 단기부동화가 심화되고 있어 유동성 함정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머니마켓펀드(MMF)는 `현금성'이 강한데 MMF가 급증하는 것은 사람들의 현금보유 욕구가 강해진다는 의미"라며 "단기 자금은 넘쳐나는데 장기 시장으로 돈이 움직이지 않는 단기부동화도 유동성 함정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자금이 계속 무위험 자산에만 쏠리면서 신용위험이 있는 기업에는 자금이 확산되지 못하면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금리인하는 모두 경기부양의 패키지로 이해해야 한다"며 "현재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하폭만큼 동일하게 떨어지기는 어렵고, 정책시차를 감안해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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