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앞 광장은 봄 소풍을 나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은 도심 한복판을 활보했다. 엄마 아빠는 연휴동안 가족들이 해결해야 할 '민생고'를 단단히 챙겨들고 나왔다. 텐트는 72시간 머물 소담스런 둥지였다.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가 주관한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를 동행취재한 본보 취재팀은 곳곳에서 이 같은 풍경을 확인했다.
현충일인 6일 저녁. 이날은 촛불이 점화된지 한달여만에 가장 많은 시민들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 이날 시청 앞 광장에는 20만명이 운집했다. 경찰 추산 5만6000명.
본보 취재팀은 소풍나온 가족들, 밤 마실 나온 선남선녀들, 인터넷공간에서 만나 소개팅하듯 만나서 즐기듯 차도를 메운 시위가 그저 놀라울 뿐 이었다.
5월2일 청계광장에서 점화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한달은 넘게 이어져 온 저력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동안 촛불시위에 대한 이런저런 배후 논쟁으로 몇몇 언론이 시끄럽게 지면을 채울 때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떠올라 잠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수진(여 22) 광우병대책위원회 관계자는 “70~80년대처럼 쇠파이프나 화염병을 들고 피로 물들이면서 뜻을 펼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며 “이제 우리는 쇠파이프가 아닌 촛불하나하나에 우리의 뜻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는 ‘환경미화 도우미’들이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모으고, 의대 학생 등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단,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각종 현장봉사단과 거리공연단이 시위대 주변을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지켰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재협상을 시작하라, 이명박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한 목소리고 외쳤다, 촛불시위 기간 내내 <헌법 제1조>는 애국가가 됐다. 시민들은 노래에 맞춰 “국민심판, 이명박”, “협상무효, 고시철회”가 적힌 손 팻말을 흔들었다. 이럴 때면 시민들은 자유발언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 한판이 만들어진다.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기간동안 시민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광야에서' 등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남대문∼명동∼을지로∼종로∼안국동의 경로를 거쳐 청와대 방면으로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
집회 참가자 박민수(남 26)씨는 “우리에겐 지켜야할 미래와 지켜야할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국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며 “우리의 생각이 관철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경찰이 진압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몸싸움이 벌어질 때 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양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또한 시위대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전경들과 대치할 때는 "전경들~ 밥 줘라~", "전경들~ 재워라~"고 외쳤고 물과 음식을 건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휴일을 맞아 문화제에 나왔다는 이신재(남 48)씨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며 “비폭력시위는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촛불 집회에서 눈길을 끈 건 '예비군 부대'의 등장이었다. 촛불 거리시위가 처음 시작된 지난달 24일 이후 촛불문화제가 본격적인 거리시위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시위대의 맨 앞에는 예비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일 때면 시위대 선두에서 스크럼을 짜고 완충 역할을 했으며 도로점거 시위에서는 시위대가 다치지 않도록 자율적 교통통제 역할을 맡았다.
또한 시위 현장을 실시간 생중계 한 인터넷 동영상 등 `인터넷 소통 문화'는 시민들을 거리로 잇따라 쏟아져 나오게 만든 ‘동력’이 되었다. 이날 다음 ‘아고라’ 소속 누리 꾼 1만여 명은 촛불 문화제에 참여해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을 진행한 뒤 6.10 항쟁 기념일인 10일 10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