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골프史] 필드와 영원히 이별한 '그린 위 투우사'
2024-08-14 06:00
로드리게스, 지난 8일 88세로 별세
PGA 투어 8승·투우사 세리머니 남겨
PGA 투어 8승·투우사 세리머니 남겨
프로골퍼 후안 안토니오 '치치' 로드리게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그린 위의 투우사'의 표어다.
로드리게스는 1935년 10월 23일 푸에르토리코 리오 피에드라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드리게스의 아버지는 노동자이자 가축 관리자로 주당 18달러(약 2만4000원)를 받으며 여섯 형제를 키웠다.
로드리게스가 생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7세부터다. 가난을 버티기 위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물을 운반했다.
골프와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우연히 방문한 한 골프장에서 캐디가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캐디 일을 시작한 로드리게스는 골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구아바 나뭇가지로 골프채를 만들었다. 금속으로 된 캔을 골프공처럼 쳤다.
골퍼들의 플레이를 눈으로 보면서 독학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9세에 능숙해졌고 1947년 12세에 67타를 기록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4년에는 미군에 입대했다. 휴식 시간에는 근처 골프장을 찾아다니며 골프 실력을 키웠다.
프로골퍼로 전향한 것은 1960년이다. 첫 우승은 28세였던 1963년 덴버 오픈에서 기록했다. 1979년까지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8승을 쌓았다. 시니어 투어인 챔피언스에서는 22승을 기록했다.
170㎝에 68㎏인 선수가 덩치 큰 미국·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유의 카리스마, 익살스러운 몸동작과 농담 등으로다.
버디 이상을 기록하면 자신의 중절모를 홀에 씌웠다. 투우사 세리머니 역시 인기였다. 로드리게스는 퍼터를 '칼'로, 골프공을 '황소'인 것처럼 생각하며 칼춤을 췄다. 일명 토레아도르 춤이다.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흑인 캐디와 찍은 사진도 유명세를 탔다. 마치 래퍼와 투우사가 오거스타 내셔널을 도는 것 같았다.
로드리게스는 1992년 세계골프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이후에도 미국골프협회(USGA) 봅 존스 어워드, 미국골프장관리자협회(GCSAA) 올드 톰 모리스 어워드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로드리게스는 76세였던 2012년 3월 푸에르토리코 오픈에 명예 선수로 출전했다. 선수로서 출전한 마지막 정규 18홀이다.
로드리게스는 2024년 8월 8일 88세 나이로 사망했다. 누구보다 골프에 진심이었던 그는 1992년 한 챔피언스 대회에서 자존심만 세우는 젊은 선수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였다.
"많은 프로가 최고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난 아직 전성기다. 몸매도 좋고 젊다. 나만의 매력으로 많은 팬을 챔피언스로 끌어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