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골프史] 골프공 줍던 제주소년 양용은, '레전드 골퍼' 킬러로

2024-09-11 06:00
19세 아르바이트…어깨너머 독학
男 메이저대회서 우즈 꺾고 우승
이번 시니어 무대에선 랑거 잡아

2009년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PGA 챔피언십과 2024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스 대회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양용은. 양용은은 2009년 미국의 타이거 우즈, 2024년 독일의 베른하르트 랑거를 상대로 우승했다. [사진=AFP·연합뉴스]
강풍이 부는 제주 서귀포의 한 가정에서 소년이 태어났다. 여덟명 중 넷째로다. 소년은 19세에 연습장에서 공을 줍는 아르바이트로 골프를 접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굴착기를 배우라 했다. 배우기 위해 들어간 건설사에서 무릎을 다쳤다.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보충역으로 제대한 소년은 1991년 다시 골프채를 쥐었다. 제주시 오라 골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다. 프로골퍼의 스윙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독학이나 다름없었다.

소년은 뉴질랜드로 향했다. 1995년 준프로와 1996년 프로가 됐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입회는 1997년이다.

소년의 이름은 양용은이다. 양용은은 2002년 SBS 동양화재컵에서 프로 첫 승을 거뒀다.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운명은 2006년 한국오픈 우승으로 시작된다. 이 우승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HSBC 챔피언스 출전권을 얻는다. 당대 최고 선수였던 '황제' 타이거 우즈를 2타 차로 누르고 우승했다.

단순한 운이 아니었다. 양용은은 2009년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다시 한번 우즈를 눌렀다. 이번엔 3타 차로다.

두 번의 우승으로 '타이거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즈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다승(82승), 메이저 최다승 2위(15승)를 보유한 선수다.

지난 7월 메이저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즈는 "양용은에게 당한 패배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몇 차례 더 우승한 양용은은 2022년 PGA 투어 챔피언스에 합류했다. 챔피언스는 미국 시니어 투어다. 피지의 비제이 싱, 남아공의 어니 엘스, 미국의 존 댈리 등이 뛰는 전설들의 무대다.

양용은은 이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71번째 대회까지 우승이 없었다. 그렇게 72번째 대회가 도래했다. 어센션 채리티 클래식이다. 이틀 연속 선두를 달리던 양용은은 마지막 날 13언더파 200타를 쌓았다.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상대는 '독일 병정' 베른하르트 랑거. 랑거는 챔피언스 최다승(46승), 최고령 우승(65세 10개월 5일) 보유자다. 양용은은 강자를 상대로 다시 한번 킬러의 면모를 보였다. 승부는 1차전에서 났다. 랑거는 3m를 놓쳤고, 양용은은 2m 버디를 넣었다.

양용은은 두 팔을 번쩍 들며 우승 기분을 만끽했다. 15년 전 우즈를 꺾을 때와 같은 미소, 같은 표정, 같은 몸짓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