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장애인 복지는 내 미래를 위한 '보험'

2023-06-11 11:43

김도영 행정학자

보통 우리가 국경일이나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날들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처음 기준은 위대한 위인의 탄생이나 역사에 남을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되는 날이다. 세종대왕 탄신일인 '스승의 날'과 '현충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럼 또 다른 기준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엔 사회 약자들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지정한 '장애인의 날'이나 '노인의 날'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유엔에서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4월 20일을 제1회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1994년에는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실제로 얼마나 장애인 삶에 관심을 가지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을까. 올해도 장애인의 날에 들려온 뉴스는 씁쓸했다. 장애인이 배려받으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보다는 차별 경험과 인권 침해 사례들이 들춰졌다.

우리나라 장애인 통계를 살펴보면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전국 등록 장애인 수는 약 260만명이다. 이 가운데 80%인 약 210만명이 후천적 장애인으로 조사됐으며 이와 같은 수치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 사회보장기본법은 질병·장애·노령·실업·사망 같은 사회적 위험에서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역할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 중 누구나 이런 사회적 위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피해 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사회적 위험 중 하나가 바로 장애다. 이 같은 사실은 현실 통계에서도 증명됐다.

전 세계적으로 복지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1942년 영국에서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다. 타고난 귀속 신분이 사회적 신분이 되었던 영국에서는 300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개인의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가가 가난한 개인을 억압하고 통제해 왔다.

오래된 인식이 전환될 수 있었던 계기는 2차 세계대전으로 국가 존망조차 위태롭던 시절이었다. 전쟁 중 모두가 궁핍과 질병, 불결로 고통받게 되면서 영국인들에게 개인의 가난이나 고통이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공감이 생겼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내가 직접 고통을 경험하고 나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다. 지난 과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실제 경험했거나 앞으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선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공감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어쩐지 이런 공식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종종 느낀다.

우리 모두가 힘들어지는 경제적 위기나 사회적 재난 상황이 오면 사회 약자들은 더욱 소외당하고 고통받아 왔다. 국립재활원 등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시기에 장애인은 모든 면에서 비장애인보다 삶의 만족도가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두 그랬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는 시간이 지나가면 모두가 다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회복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장애인에 대한 공감과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할 현실적 정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분산(Risk Pooling)이라는 것이다.

혹시 모를 내 미래를 대비하는,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한 장치이자 보험에 가입하는 셈이다. 피해 갈 수 없는 수많은 사회적 위험을 제도와 정책으로 최소화하고, 이런 방식으로 위험을 대비하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문명화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