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계층 고착화 타개를 위한 정책 방향

2024-05-02 05:00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기획처장. [사진=본인 제공]
2015년은 한국 사회에서 수저계급론이 대두된 해였다. 그때를 기점으로 지방 청년들의 수도권 순유입이 증가했고 합계출산율은 하향 일로로 접어들었다. 출산율은 생활비와 경쟁압력이 높은 밀집 지역일수록 낮은 법이다. 교육에서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고 성적에 대한 가정 배경 영향력이 커지는 등 형평성이 악화했다. 

물론 중산층 비중이 줄어들지는 않았고 공적 이전소득 증가로 처분가능소득 분배율이 개선됐다. 그러나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가 각 집단에 머무는 계층 고착 비율이 커졌고 두 집단 간의 소득 격차도 커졌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계층 이동이 줄고 격차가 커졌다. 교육의 계층 사다리 역할이 약해졌고 오히려 교육이 계층 대물림의 통로이거나 그 정당화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게 됐다. 잘사는 집 아이가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스펙까지 잘 쌓는다면 교육 경쟁의 승리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선점해도 정당한 결과처럼 보인다. 

또한 자녀 교육 투자를 통한 간접적인 계층 대물림 경로 외에도 직접적인 증여를 통해 경제력을 물려주는 행태가 근간에 발견됐다. 부유한 부모의 재력으로 풍요를 누리는 현상은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졌다. 그 이전 세대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공부시켜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여주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교육 경로 이외의 직접적인 경제력의 대물림은 뚜렷하지 않았다. 여기에 2010년대 중반부터 과시용 소셜 미디어까지 유행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음) 등의 자조적인 사회풍자가 퍼졌다. 2015년 이후 세계가치관조사에서 한국 국민은 성공 요인으로 노력보다 운이나 연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그 이전 조사들과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미국, 중국, 일본에서는 그런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사회 이동성의 약화는 사회통합도 저해하지만 경제 성장을 위한 자원배분의 역동성을 해친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상향 이동의 기회가 더 많이 생기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경제 성장은 사회 이동성이 낮아지면 동력이 약해진다. 노력에 의한 세대 내, 세대 간 상향 이동은 기회가 평등하고 재능 있는 개인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활발해진다. 그럴 때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고 인적자본 투자와 혁신의 유인이 생긴다. 또한 단기적인 분배보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에 대한 공감과 합의가 가능해지고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초래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최근 경제부총리가 사회 이동성 문제를 적극 챙기는 상황을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알게 됐다. 경제부처로서 규제개혁과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민간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을 제고하고 청년과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주요 정책 방향이라고 한다. 세대 내 상향 이동의 관건은 가구별 취업자 수와 소득 증가이기에 타당한 방향이다. 특히 청년층 취업난이 인구구조 변화로 완화되기 전인 현시점에서는 적극적인 고용서비스 제공이 시급하다. 구직자의 관점으로 각 부처에 산재한 고용 관련 정책들을 연계하고 통합된 플랫폼에서 고용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 확대와 산업수요 맞춤형 직업교육을 지원하는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교육 당국 및 교육계와 협의하여 유아 공교육의 단계적 의무화 등 양질의 조기교육을 제공하고 초등 돌봄교육과 특기적성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하면 좋을 것이며, 재원 마련을 위한 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근로소득을 통한 자산 형성을 지원하고 연금소득의 기반을 확충하는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부모나 조부모의 증여가 주된 자산 형성 원천이 되는 사회로 가지 않으려면 저소득층 자녀가 일하면서 불려 나갈 수 있는 초기 자산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더해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연금은 인구 규모가 유사한 연령대들을 묶은 집단별로 운영하는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해 세대별 연대의 토대 위에서 지속가능성과 세대 간 정의를 담보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계층 고착 사회를 방지하는 길은 미래세대와 함께 번영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