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이유 없는 판결, 소액사건심판 이유라도 알았으면

2021-11-15 09:56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소송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금전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 심리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소송을 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인 것은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을 하기로 마음먹고, 실제로 소송을 한다면 그건 정말 큰 결단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중대한 일이 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겨도 의뢰인들은 소송의 한순간, 한순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판결이 선고되기 전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뢰인도 자주 본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소송을 해도 상당수는 이겨도 이긴 이유를 알지 못하고, 져도 진 이유를 알지 못한다. 바로 '소액사건심판법',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이하 '상고심법') 때문이다.

'소액사건심판법'은 소송액이 3000만원 이하인 사건을 '소액사건'으로 보고 그 판결서에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3000만원이면 우리 국민 대다수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데 이를 '소액사건'으로 취급하는 것도 마뜩잖은 일이지만, 승패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니 어렵게 소송을 한 사람은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긴 사람은 그나마 낫지만 진 사람은 진 이유를 모르니 판결에 승복하기 어렵고, 이유를 모르니 항소를 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고, 항소를 해도 어떻게 재판부를 설득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이렇게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구체적인 이유를 기재하려면 판결서 작성에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라 한다. 법관의 수는 부족하고, 처리해야 할 사건의 수는 많고, 판결서 작성에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고 하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아니 최소한 소송에까지 나선 당사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유를 아예 적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간략하게 적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국민의 알 권리'와 '재판의 신속성, 효율성'을 가늠하면 구구절절한 장문은 아니어도, 간단하게라도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 절충점이 되지 않을까? 소액사건의 판결서에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생긴 것은 1990년이다. 벌써 30년이 넘게 우리 국민은 자신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돈이 걸린 소송을 '소액사건'이라는 이유로, 아무 이유도 모르는 판결을 받아온 것이다.

이유 없는 판결을 받는 것은 대법원에 상고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고심법에서 상고이유에 원심판결의 법률위반, 대법원판례 위반 등의 일정한 심리 속행 사유가 없으면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보통 '심리불속행 기각판결'이라 한다. 이런 심리불속행 기각판결의 판결서에는 '심리 속행 사유가 없다'는 한 줄만 이유로 기재된다. 2심 판결이 아무리 문제가 크더라도, 그 사건이 아무리 중요해도 단 한 줄의 이유로 상고는 기각되고 2심 판결은 확정된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 심리를 속행하고, 어떤 경우에 심리불속행이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상고심법에 심리 속행 사유 규정은 있지만 판결서에는 심리 속행 사유가 없다고만 할 뿐 그 이유를 기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원 상고를 해본 변호사들은 대법원 상고를 두고 '복불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열심히 원심판결의 법리 판단 문제점을 심리 속행 사유에 맞춰 상고이유로 제시해도 심리불속행기각이 되는 경우가 많고, 반대의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면 좋겠지만 법관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해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2심 판결이 아무리 억울해도, 아무리 법리 판단에 문제가 있어도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자주 나오게 된다.

이 문제 역시 대법관의 수는 모두 14명으로 적지만 처리해야 할 사건의 수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으로 상고심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 대법관의 수를 획기적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대법관은 증원하지 않고 상고심법원을 설치하려는 노력은 이른바 사법농단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엔 몇 년째 아무런 개선도 되지 않았다. 상고심법원도 설치되지 않았고, 대법관 증원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아무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상고기각을 당하는 일은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상고심법원, 대법관 증원 어느 쪽으로 되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 그동안 과도기적인 조치라도, 최소한 제시된 상고이유가 심리 속행 사유가 되지 않으면 왜 되지 않는지 그 이유라도 심리불속행기각 판결에 기재하는 것은 어떨까? 심리불속행이 되는 이유라도 안다면 그나마 상고를 기각당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설득될 수 있지 않을까?

판결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우리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수단이다. 법질서에 호소하는 국민들에게 우리 법질서가 무엇이고, 무엇이 타당한 것인지를 판결을 통해서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이유는 없고 결론만 알려줄 뿐이다. 이유 없는 결론만으로 설득이 될 리 만무하다. 이유 없는 판결이 쌓이는 만큼 우리 법질서에 대한 불신도 그만큼 함께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