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아시아나 인수 ‘결단’... 조중훈 창업주 수송보국 ‘데자뷔’

2020-11-16 12:21

한진가(家)가 위기에 빠진 국내 항공업계의 구원투수로 다시 한번 나섰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과거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경영철학으로 위기의 국내 항공업계를 구해냈던 것처럼 조원태 회장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코로나19에서 ‘공생’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17일 조중훈 창업주 18주기 추도식 앞두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 밝히며 의미 더해
오는 17일 조 창업주의 18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16일 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를 밝히면서 그 의미를 더 뜻깊게 했다.

이번 인수 계획 발표는 조 창업주가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를 사들일 때의 데자뷔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조 창업주는 1960대 말 부실 덩어리 공기업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국내 항공업계의 새로운 기틀을 다진 바 있다.

당시 조 창업주는 정부의 대한항공공사 인수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했으나, 결국 국적기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받아드렸다. 적자투성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 경영 상태가 어려워질 것이 뻔했으나 “만인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이라면 만 가지 어려움과 싸워나가면서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기업의 진정한 보람이 아니겠는가”라며 임직원들도 직접 설득했다.

이후 대한항공으로 거듭난 대한항공공사는 조 회장과 그의 아들 고 조양호 선대회장으로 이어지며, 160대가 넘는 항공기와 110여개 도시의 국제선을 확보한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 1969년 조 창업주가 인수할 당시 불과 8개의 항공기로 국제노선 3개를 운영하는 소규모 항공사에 불과했던 대한항공공사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내 항공업계가 독점과 구조조정 등 여러 우려 속에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반기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걸림돌이 있다.

◆기업결합 심사 등 과제 많아... 노조 설득도 난항 예고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국내 항공업계의 절반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국내선 점유율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다.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합치면 합병 시 이들의 점유율은 62.5%에 이른다.

국내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각국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기업 간 합병 시 시장 경쟁이 제한될 경우 결합을 불허하거나 가격 인상 제한·특정 사업 부문 매각 등 조건을 달아 승인한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은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 무난히 심사를 통과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제주항공-이스타항공 등의 합병을 공정위가 승인했던 것처럼 이번 인수전도 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자본잠식률 등을 고려하면 아시아나항공이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 ‘3자 연합(KCGI, 반도건설 등)’의 반대도 문제다. 한진칼 지분의 45.23%를 보유한 3자 연합 등이 가처분 소송 등을 통해 산은의 한진칼 자금 투입 등을 저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3자 연합은 오는 17일 한진칼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칼 자회사 한진의 택배사업 분리 매각 등을 안건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자산 유동화를 통해 그룹 안정성을 꾀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는 조 회장의 행보와는 배치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3자 연합은 대한항공의 아사이나항공 인수를 조 회장이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꼼수로 보고 있다”며 “실제 투자자로 나선 산업은행이 조 회장에 편에 서게 되면 3자 연합의 지위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고 말했다.

두 항공사의 임직원, 주주 등 직간접적인 관계자들의 설득도 과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인력구조조정과 부실 사업 정리 등 민감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로 인해 경영 안정성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현실화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코로나19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해온 대한항공 관계자는 물론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할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들이 받아드릴지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한편 한진그룹은 조 창업주의 추도식을 따로 열지 않고 조 대한항공 회장 등 한진가와 회사 주요 경영진만 경기 용인시 신갈에 모여 조용하게 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제공]